오피니언 사설

경찰 스스로 공권력 허물려 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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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찰의 이번 조치는 전.의경들의 경우 얼굴이 헬멧에 가려 있는 데다 이름표가 없어 과잉 진압하는 경향이 있다는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과잉 진압이 있어선 안 된다. 지난해 말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 두 명이 목숨을 잃는 불행한 일마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적인 시위문화가 개선되지 않고선 '폭력시위-강경진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폭력 시위대는 대부분 복면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 자신의 신원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들이 쇠파이프와 죽창을 휘두를 때 진압 경찰은 방패 하나에 생명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이름표를 달고서 조금이라도 과격한 진압을 했다간 책임을 면할 수 없으니 부상자는 늘어날 것이고 시위는 누가 막을 것인가. 지난해만 해도 시위 진압 과정에서 747명의 전.의경이 다쳤고 이 중 138명은 중상이다. 나이 어린 전.의경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게 경찰의 시위문화 개선 대책인가.

시위문화 개선의 출발점은 엄정한 법 집행이다. 시위대가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폴리스 라인(경찰 통제선)'을 침범해도 이를 묵인한다면 법과 공권력에 권위가 설 수 없다. 그래서 선진국은 폴리스 라인 침범 행위에 대해선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력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공권력이 무력화한다면 폭력시위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임은 불을 보듯 훤하다. 따라서 공권력이 제대로 집행되게끔 힘을 실어주면서 시위문화를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정부는 국가의 임무를 스스로 포기하고 공권력에 대해 자해 행위를 하니 참으로 알 수 없다. 경찰은 전.의경들의 진압복에 이름표를 붙일 게 아니라 불법 폭력시위에 더 엄중히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