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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청산’ 벽에 부닥친 인명진, 그의 플랜B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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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인명진호’의 개혁 실험이 암초에 부닥쳤다. 지난 6일 비상대책위원 선출을 위해 소집한 상임전국위원회 개최가 무산되면서다.

새누리당 내분 어디까지 가나

상임전국위원 51명 중 과반인 의결정족수(26명)를 채워야 하는데 1시간40분을 기다렸지만 결국 2명이 모자랐다. 친박의 맏형 격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은 부인하고 있지만 인명진 비대위원장 측은 이들이 조직적으로 상임전국위를 무산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서 의원은 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상임전국위가 무산된 건 당원과 보수 지지자들의 불만이 반영된 것”이라며 “인 위원장은 탈당 강요를 중단하고 8일 분명히 거취를 밝히라”고 압박했다. 서 의원은 이어 “탈당을 강요하는 건 정당법상 중한 죄이고 의원들에게 거취 관련 위임장을 받은 뒤 자의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위장 탈당’ 또한 강압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라며 인 위원장을 검찰에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편법적인 비대위가 아니라 전당대회를 통해 구축된 정통성 있는 지도부가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며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기도 했다. 최 의원도 탈당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인적 청산이 이뤄지기 전에는 비대위 구성도 무의미하다던 인 위원장이 기존 입장을 바꿔 비대위 구성에 나섰던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비대위원이 있어야 당 윤리위를 가동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인 위원장 측은 “서·최 의원이 계속 버티겠다고 하면 윤리위에서 ‘당원권 정지’ 같은 특단의 조치라도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초 자진 탈당 기한을 지난 6일까지로 제시한 만큼 마냥 시간을 끌 순 없었다는 얘기다.

인 위원장은 당초 지난해 12월 30일 인적 청산 카드를 꺼내면서 “과거에 책임지지 않고 사람을 청산하지 않으면 새 정당을 창당한다 해도 새누리당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인 위원장 영입에 적극 나섰던 서 의원이 뒤통수를 맞았다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서 의원은 지난 2일 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인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기 전에는 ‘지금 누가 누구를 청산할 수 있습니까. 말이 안 되죠’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입장을 바꿨다”며 자신과의 통화 내용을 폭로했다.

그러자 인 위원장은 3일 더욱 독한 표현을 써가며 친박계를 압박했다. “인적 청산은 종양의 뿌리를 없애는 것”이라며 서·최 의원을 ‘악성 종양’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일본 같으면 할복을 했다. 새누리당은 서청원 집사님이 계신 교회”(인 위원장)라거나 “막말을 하는 거짓말쟁이 성직자는 당을 떠나라”(서 의원)라는 등 격한 말들이 오갔다.

당내 갈등이 격화되면서 친박계 내부도 요동쳤다. 지난 2일 가장 먼저 탈당을 선언한 이정현 전 대표에 이어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이 4일 탈당계를 제출했다. 정우택·홍문종·원유철 등 친박 중진을 포함한 의원 50여 명도 인 위원장에게 거취를 위임했다. 홍 의원은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친박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비칠 경우 당의 환골탈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 위원장이 결국 서·최 의원만 쳐내고 말 거라는 ‘위장 탈당’ 논란에 이들의 진정성도 의심받고 있다.

인 위원장은 자신의 거취를 포함한 향후 당 개혁 방안에 대해 고심 중이다. ‘1호 개혁 과제’라던 인적 청산이 장기전으로 간다면 당명 변경 등 다른 노력도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우택 원내대표와 이현재 정책위의장 등은 “인 위원장의 심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에 7일 오후 서울 중구의 인 위원장 자택을 급히 찾았다. 정 원내대표는 “인 위원장이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8일 기자회견을 예정대로 할지도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인 위원장이 사퇴를 선언할 경우 2차 탈당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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