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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뿔났다 … 거세지는 출산지도 반발 시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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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호 2 면

지난 6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인도에 빨간색 천으로 만든 아기 자판기가 등장했다.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 카페 ‘BWAVE(Black wave)’ 회원들이 여성을 출산 도구로 비하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행정자치부가 지난해 12월 29일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숫자’를 기록한 한국 출산지도를 인터넷에 공개한 이후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BWAVE 회원 50여 명은 이날 청사 후문에서 집회를 열었다. “우량 암소 통계 내냐, 출산지도 웬말이냐.” “내몸이다, 이것들아. 어따 대고 낳으라 마라냐.” 이들이 현장에서 외친 구호는 지나는 여성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시위를 주도한 BWAVE는 지난해 10월 개설된 인터넷 카페다. 임신 중단에 관한 사회적 통념을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졌다. 익명으로 운영되는 이 카페에선 낙태라는 말 대신 임신 중단을 쓴다. BWAVE는 보도자료를 통해 “가임여성 숫자와 저출산 대책은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며 “출산지도에는 ‘이렇게 많은 여성이 있는데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는 남성중심적 시각이 담겨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선진국에서는 사회가 자녀 양육 책임을 부담하고 출산한 여성의 일자리를 보장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BWAVE는 8일 오후 1시부터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위를 열 계획이다. 이들은 홍윤식 행자부 장관의 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출산지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자 행자부는 6일 기자 설명회를 열고 사과했다. 김성렬 행자부 차관은 “전문가 의견을 더 듣고 여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제도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출산지도는 지자체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에서 추진된 정책이었다. 행자부 관계자는 “지자체 간 출산 지원 혜택을 비교해 자율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정책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출산지도 홈페이지는 7일 “수정 작업 중”이란 공지문만 등록된 채 닫혀 있다.


여성 단체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일격을 당했다”는 반응이다. 저출산 정책을 주도하는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가 아닌 행자부의 정책으로 문제가 불거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출산지도는 논평할 가치도 없는 정책”이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저출산 정책이 목적이나 방향성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출산지도 논란은 대선을 앞둔 정치권으로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30일 트위터에 “행자부가 ‘가임기 여성지도’를 작성하고 공개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 출산율 하락의 이유가 여성 때문인가. 일제 식민통치시대의 인구조사를 보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우리는 아이를 낳는 기계가 아니고 닭장의 닭도 아니다”고 적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출산지도를 비판하는 패러디물도 등장하고 있다. 여성 래퍼 슬릭(본명 김령화)은 ‘내꺼야’라는 제목의 노래를 통해 “나라 출생률이 낮아 걱정된다면 말야. 그냥 애 키울 돈을 줘. 사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대놓고 말해. 내게 책임을 지운 걸”이라고 비판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저출산 현상은 주거, 교육, 의료 문제가 복합된 것”이라며 “포퓰리즘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된 인구부총리 같은 인구정책 컨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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