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자성어' 알면 글의 핵심이 보여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호흡이 긴 기사를 한자성어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면 글의 핵심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진은 초등학생들이 광주향교의 한자교실에 참여해 훈장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자소학을 익히는 모습. [중앙포토]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가운데 으뜸은 '약팽소선(若烹小鮮)'이다. 한 신문이 대학교수 195명을 대상으로 2006년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소망을 담은 사자성어를 설문 조사한 결과다. 약팽소선은 '노자(老子)' 60장에 나오는 말로,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으므로 생선살이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면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뜻이다. 기사를 읽고 그 내용을 한 단어의 한자성어로 표현하는 공부를 해 본다.

다양한 어휘를 구사하는 능력은 그 사람의 지식과 교양의 잣대가 된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고사성어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조상의 경험에서 비롯한 지혜와 교훈이 바탕인 만큼, 그 속에 얽힌 사연을 깊게 이해한 뒤 적절히 사용하면 언어생활이 풍요롭고 세상을 바로보는 안목까지 기를 수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가 가고 새 해가 밝았다. 그러나 요즘 신문을 펼치면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논문 조작이라는 잘못을 저질러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을 보여주는 서울대 황우석 교수 팀의 줄기세포 사건이 연일 톱뉴스를 장식한다.

오늘날 생명공학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해 인간 복제 얘기가 나올 만큼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발전했다. 과학자의 꿈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일진대 황 교수 팀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없는 기술로 허황된 희망을 심어줘 혹세무민(惑世誣民)했고, 조급증으로 목전의 명성을 얻으려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해 국민의 커다란 여망을 저버렸다.

그리고 한결같이 책임이 없다며 발뺌하느라 바쁜 논문의 공동 저자들에게선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세태를 엿보게 했다.

정치권에선 그의 대중적 인기를 당리당략(黨利黨略) 차원에서 활용하기 위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천거까지 하려 했으며, 연구비에 쪼들리던 황 교수는 정치권력이 필요해 그들과 상리공생(相利共生)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결국 거짓 행각이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나 국민적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거짓말쟁이가 돼버린 사이비(似而非) 과학자의 말로를 보며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를 느끼게 된다.

신문엔 또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국회의원들의 부화뇌동(附和雷同)을 비판하는 기사도 실리고, 범죄 집단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한 경찰의 공적이 소개되기도 한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해낸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미담기사도 보이지만, 동빙한설(凍氷寒雪)에도 냉방에서 외롭게 고생하다 숨을 거둔 독거노인들의 소식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한 순간 방심하다가 수많은 사람이 죽고 평생 모은 재산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화재 현장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교훈이 뼈저리다.

하천 제방이 무너져 수재를 입었지만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하석상대(下石上臺)의 임시방편 공사로 지난해 다시 수재를 입은 지역이 이번에는 눈 피해마저 당하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상황에선 아연실색(啞然失色)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미국에서도 허리케인 피해를 당한 이재민들에게 돌아갈 적십자 성금을 착복한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사람들도 있음에랴.

그럼에도 심신장애를 안고 마라톤을 완주해 영화의 주인공이 되거나 국제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주인공에게선 고난을 극복한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의지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경제면을 살펴보면 대기업의 수출은 좋았던 반면 중소기업과 내수는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운니지차(雲泥之差)를 보였는데, 주가는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구직난이 심한 가운데 인재를 찾기 위한 기업들의 삼고초려(三顧草廬) 현상도 여전하다.

신문기사를 읽을 때뿐 아니라 뉴스를 소재로 대화하는 중에도 한자성어가 자연스레 등장한다. 요절한 미모의 여배우를 두고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 안타까워 하고, 데뷔 10여 년 만에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 배우를 가리켜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탄복한다. 이렇듯 한자성어는 우리 언어생활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으며, 장황하게 설명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한두 마디만으로 뜻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직설적인 표현보다 더 유연하고 재치를 더해 언어생활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유용하고 편리한 고사성어가 한글세대에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부부유별(夫婦有別)처럼 무색해진 고사성어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은 이모티콘에 익숙한 한글세대에 멀게만 느껴지는 한자성어를 쉽고 친근하게 익히며 시대의 변화상도 비교할 수 있는 학습이다.

이태종 NIE 전문기자, 조종도 기자

*** 바로잡습니다

1월 16일자 21면의 '신문기사 속에서 사자성어 배우기' 기사에 쓰인 사진은 광주향교에서 '천자문'을 익히는 모습이 아니라 '사자소학'을 익히는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