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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군정만행 「단죄」서「면책」으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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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기자가 붸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날 밤중에 아르헨티나의 여러 도시에서 16건의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집권당인 급진당 당사를 대상으로 한 이 폭발사건에서 인명피해는 전혀 없었다. 그것은 이번 공격이 본격적인 테러가 아닌 위협시위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범인들은 정체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좌파와 우파 어느쪽에서 폭탄을 장치했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느낌으로 모두 알고 있었다.
「오베디엔시아 데비다-. 「복종율」이라는, 의회를 갓 통과한 새법이 바로 그 전날 대법원의 합헌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이법은 85년부터 계속되어온 구군정의 고문 관련자들에 대한재판에서 형사책임을 크게 면제해주고 있다. 이 법은 7년 군정동안에 좌파게릴라 운동을 분쇄하는 과정에서 군이 저지른 과잉 탄압행동을 심판해온「알폰신」정권이 하위장교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닥쳐 할 수없이 내놓은 무마책이다.
이 법이 나오자 군정 아래서 불법적으로 자행된 납치·고문·학살의 피해자 9천여명의 유가족들이 들고일어났다. 23세된 딸 「화니타」가 10년전 군정보원에 끌려간 이래 아직도 생사를 모르고 있다는 한「광장의 어머니」는 『이대로 그들을 사면한다면 다음에도 또 그런 만행을 저지를 것이 아닌가? 군은 자기들 중죄를 지은자들을 처벌받게 협조함으로써 군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군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 바람직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군쪽에서는 전혀 다른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들은 우선 아르헨티나가 지금처럼 국내 질서와 안정을 누릴수 있게된 것은 자기들이 행한 이른바 「더러운 전쟁」이 승리했기 때문이라며 자기들을 죄인취급하기 보다는 오히려 영웅으로 칭송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이 저질렀다는 야만적 탄압행위도 사실보다 과장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와 같은 1문방위선을 친 다음에 군은 설혹 잘못이 있었다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령복종을 조직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군대에서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한 결과이므로 처벌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나치 전범들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내세운 변호논리와 같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의 인권운동 지도자「에밀리오·미뇨네」는 『억류인사를 고문·암살하는등의 불법적 범죄행위는 설혹 상부명령이라도 복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 군의 범죄적 명령에 복종한 행위가 사면된다면 아르헨티나군은 범죄집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통박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군인은 명백한 불법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으며 이 결정은 「고문 및 기타 잔학, 비인도적 가해와 처벌에 관한 UN 협약」의 모습으로 국제법에 삽입되었다. 아르헨티나는 86년 이 협약을 인준했다. 따라서 「복종율」입법은 이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인권운동가 「세자프·첼랄라」는 주장하고 있다.
일부 군피의자들은 법정에서 자기들은 「더러운 전쟁」이란 「특수상황」에서 작전하다보니 특수한 방법이 불가피했다는 변론을 펴기도 했는데 UN 협약은 이에 대해서도 『전쟁의 임박, 전쟁상태, 국내 정치불안, 또는 다른 어떤 비상상황도 고문을 정당화시킬 구실이 될 수는 없다』고 못박고 있다.
군정기간의 만행을 둘러싼 논쟁은 당사자인 군과 피해 유가족말고도 직접 피해는 받지 않았지만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잔학행위를 그처럼 오랫동안 방관해온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묘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웃이 당한 엄청난 고통을 외면해온 죄책감을 심리적으로 정당화시키는 방편으로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 하거나 문제가 표출되지 않은채 사그라져 없어지기를 바라는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반적 분위기 속에서 문제의「복종율」입법은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도전의 신호로서 급진당 당사가 폭파된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재판에서 대통령을 지낸 「비델라」장군과 「비올라」장군이 각각 종신형과 17년형을 받아 복역중이다. 이밖에도 5명의 전군지휘관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밖에 군사재판에 계류중인것이 1천7백건, 민간재판에 걸린것이 3백건 정도 있다.
그러나 이번 「복종율」입법으로 이들 대부분이 풀려나게 되었다. 이 법은 명령을 하달하는 지위에 있었던 30명 정도의 고위장교와 강간·청소년납치 및 재산탈취 혐의를 받고있는 군인들은 사면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렇지만 피해자측과 인권운동측은 이법이 이름만 다르지 실질적으로는 대사면법이며 9월에 있을 선거만 치르고 나면 군이 원하고 있는 전면 사면법이 나올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아르헨티나의 진통은 탈군정·문민화를 겪고있는 모든 나라에 중요한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군정시대의 고통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문민화과정은 피정복군대에 대한 보복의 형태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첫째 교훈이다.
때문에 「알폰신」정부는 군정시대의 범죄를 처단하기 위해 어떤 특별법도 제정하지 않았다. 이민간 정부가 군을 심판함에 있어서 채택한 기본법 이론은 군요원들이 행동을 취하고 있던 당시의 법에 의해 범법행위가 되는 행동을 그 당시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이었다.
도중에 하위장교들의 반발로 좌절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최상급 지휘자들은 모두 실형을 받았거나 앞으로 재판이 이루어질 길이 틔어있다. 피해당사자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반세기이상 쿠데타의 악순환을 겪고있는 남미에서 군정책임자들을 그 정도나마 단죄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알포신」대통령은 지난 4월 군일부에서 반발이 일어났을때『민주주의는 타협의 대상이 될수 없다』고 극적인 발언을 해서 대통령궁 앞에 모인 군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지만 그는 「복종율」입법을 통해 행동으로는 민주주의가 타협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와 같은 타협이야말로 지난 50여년 동안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마다 예외 없이 쿠데타로 풀려나게 되었던 아르헨티나의 암울한 정치에 문민화의 전도를 굳힐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알폰신」 대통령은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설득하려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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