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에 칼 뺀 특검 “블랙리스트, 김기춘 윗선도 확인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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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국가정보원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 중이다. 특검팀은 ‘두 개의 칼’을 사용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반정부 성향 인사 명단) 작성 의혹과 함께 ‘삼성 합병’ 특혜 의혹에도 국정원 관계자들이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검팀 핵심 관계자는 4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국정원이 여러 곳에서 개입한 단서를 일부 확보한 것은 맞다”며 “국정원 관계자에 대한 소환조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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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김기춘(77) 전 대통령 비서실장(지휘)→이병기(70) 전 국가정보원장(총괄)→조윤선(51)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행)’의 삼각 고리가 만들어졌을 개연성을 조사 중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정례 브리핑에서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장관이 블랙리스트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느냐’는 질문에 “소환할 때 밝히겠다. (피의자 신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집 압수수색을 진행한 이 전 국정원장에 대해선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면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이 전 원장이 블랙리스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 전 원장은 전날 “단언컨대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리스트 작성에 국정원 개입 단서 확보”
이병기, 김기춘·조윤선에 협조 의심
“국정원, 삼성 합병도 관여 진술 있다”
국민연금 동향 청와대에 보고 정황
추모 국장, 우병우에 보고한 의혹도

국정원의 통상업무와 블랙리스트 의혹이 혼재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블랙리스트는 국정원이 주도적으로 나선 게 아니다. 청와대에서 자료를 달라고 하면 평소 동향을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성향 파악 자료로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블랙리스트 작성의 ‘소스’ 정도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검팀 수사는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의 시작점도 찾고 있다. 문체부에서 시작된 수사는 국정원, 청와대 순으로 상향식 진행을 하고 있다. 특검팀 고위 관계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윗선’ 존재 여부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특검팀은 5일 송수근(55)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 송 차관은 2014년 10월부터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있으면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총괄 담당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에 대해 송 차관은 “블랙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국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도 관여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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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팀은 국정원 직원이 2015년 6~7월 안종범(58)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 위원들의 성향이나 합병 찬반을 둘러싼 국민연금 내부 분위기를 전달하는 등 국민연금의 내부 동향을 파악해 보고한 정황을 파악했다. 특검팀은 안 전 수석의 휴대전화 녹음파일 등을 토대로 관련자를 추적하고 있다. 특검팀의 국정원에 대한 수사는 더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정원 소속 추모 국장으로부터 국정원 내부 정보보고를 받으면서 군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장에서 제기된 국정원의 ‘양승태 대법원장’ 사찰 의혹 등이 아직 남아 있다. 특검팀 관계자는 “최근 정부 및 기업 인사를 소환조사하는 과정에서도 ‘국정원이 최씨 모녀의 승마계 전횡에 대해서도 파악해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거나 ‘일부 대기업이 최씨에게 휘둘리는 걸 국정원이 알고 관련 내용을 기업에 문의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진술이 계속 나온다”고 말했다.

현일훈·김나한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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