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연정 버금가는 정계개편 노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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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유재건 의장(가운데)이 13일 오전 비상집행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유 의장은 당·정·청 관계 발전연구 TF구성 방안 등을 논의했다. 유 의장 왼쪽은 이용희 고문, 오른쪽은 원혜영 정책위의장. [연합뉴스]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가운데)가 13일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대표는 공개회의 때 기자 질문에 당직자가 답변하는 식으로 회의 방식을 바꿨다. 왼쪽은 최연희 사무총장, 오른쪽은 이방호 정책위의장. 김형수 기자

지난해 10월 30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등산을 했다. 그는 점심 식사를 하면서 수수께끼를 냈다. "1989년 집권한 캐나다 멀로니 총리가 조세개혁법안을 통과시킨 결과 소속 정당은 169석에서 2석만 남기고 전멸했다. 하지만 캐나다 재정은 탄탄해졌다. 당을 몰락시켰지만 미래를 내다보며 국가 재정을 구한 정치지도자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

대통령의 탈당설로 뒤숭숭한 열린우리당에서 노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다. 11일 노 대통령이 한 발언이 멀로니 스토리와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만찬에서 "대통령은 역사와 국가를 위해 욕을 먹어도 할 일이 있지만, 당은 선거를 치러야 한다"면서 탈당 얘기를 꺼냈다. 첨석자들은 이 말을 당에 부담이 된다면 언제라도 대통령이 탈당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탈당을 말한 뒤 개각으로 야기된 당청 갈등은 자취를 감췄다. 차기 대선 주자인 정동영.김근태 두 전 장관은 대통령의 탈당을 앞다퉈 만류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만찬장에서 노 대통령에게 탈당 발언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 전 장관은 13일 "대통령 없는 여당은 여당이 아니고 여당 없는 대통령은 불안정한 구조 위에 서게 된다"며 대통령의 탈당에 반대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노 대통령의 탈당 발언은 이처럼 여권 내 질서를 단숨에 다잡는 효과를 거뒀다.

게다가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의 탈당 카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과거형이 아닌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요즘도 연정 구상의 실패를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연정의 실패와 관련, "한나라당의 반대도 반대지만 여당 내부의 반발이 더 아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당시 탈당을 결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이 때문에 여권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탈당 문제는 연정에 버금가는 대통령의 장기 국정 운영 구상과 맞물려 있다고 설명한다. 노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지역구도의 타파다. 연정론도 이를 위한 방법론의 하나였다.

그래서 제기되는 시나리오가 지방선거 후 탈당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 결과 극심한 지역구도가 재현될 경우 노 대통령이 탈당을 매개로 다시 한번 정치 지형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권 안에서 개헌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지방선거 이후를 꼽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 등은 야당까지 참여하는 개헌 논의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소수지만 여권 안에선 지방선거 전 탈당을 예측하는 시각도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패배는 필연"이라며 "제 정파가 분화된 형태로 선거를 치른 뒤 선거 후 헤쳐 모여식의 정계개편을 위해 대통령이 탈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능성 면에서 회의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이 탈당카드를 선거를 의식한 단기용으로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승희 기자 <pmaster@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1월 14일자 4면 '노 대통령 연정 버금가는 정계개편 노리나' 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등산을 한 날짜는 10월 29일이 아니라 10월 30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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