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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자서전 ‘나의 투쟁’ 히트의 역설…유럽 극우 대항마?

중앙일보

입력

2016년 1월, 뮌헨 현대사연구소(IfZ)가 출간한 ‘나의 투쟁’. [AP=뉴시스]

“오스트리아는 반드시 위대한 어머니 나라 독일로 돌아갈 것이다.” 히틀러는 1925년 자신의 신념을 담은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을 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였던 히틀러가 공화국 타도를 외치며 일으킨 ‘뮌헨 쿠데타’로 투옥됐을 때 구술 필기한 책이다. 아리안 순혈주의를 강조하고 유대인 혐오 메시지를 담은 이 책은 독일노동당(나치·Nazi) 당원들의 필독서가 됐다. ‘나의 투쟁’은 사실상 나치의 도그마로 작용했다.

당대의 인기는 성경에 비견됐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1200만부 넘는 책이 팔려나갔다. 일본의 전체주의자들도 탐독하며 국내 정치와 식민지 경영에 활용했다.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에 다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폴레옹 전기와 『나의 투쟁』을 즐겨 읽었다는 설도 있다. 교사 생활을 그만둔 박 전 대통령은 만주로 가서 군인이 됐다.

종전 이후 『나의 투쟁』은 독일에서 금서였다. 저작권을 가진 바이에른주정부와 독일 당국은 극우 세력의 재준동을 우려해 출간을 막았다. 지난해 저작권 기간 70년이 만료되면서 금기는 깨졌다. 뮌헨 현대사연구소(IfZ)가 지난해 1월 재출간한 『나의 투쟁』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2000쪽 분량의 1·2권 세트인 데도 6쇄까지 찍으며 모두 8만5000부 이상 판매됐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책을 구입한 사람들은 나치를 추종하는 네오 나치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정치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인과 교사 등이 주 독자로 분석됐다고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3일(현지시간) 전했다. IfZ가 간행한 ‘나의 투쟁’은 비판본으로 불린다. 나치의 선전선동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상세히 다뤘다. 전문가들이 달아놓은 3700여 건의 깨알 같은 주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FP는 재출간본의 인기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내 극우정당의 대항 세력 형성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관측했다. 최근 이민자에 의한 테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반이민 정서가 높아지고 있는데,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극우정당의 논리가 한 세기 전 나치즘을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 교사들이 수업에 참고하기 위해 책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IfZ 책임자인 안드레아스 비르싱은 “히틀러 동조자들은 이 책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는 게 나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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