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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윤리 논쟁 불붙인 JTBC 정유라 취재…"기자는 관찰자여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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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윤리에 관한 논재의 대표 사례인 '독수리와 소녀'. 케빈 카터(작은 사진)는 이 사진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은 뒤 소녀를 구했어야 했다는 비판에 시달리다 3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앙포토]

덴마크 은신처에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찾아내 경찰에 신고한 JTBC 취재 과정에 관해 기자 윤리 논쟁이 불붙었다.

논쟁은 3일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의 글로 시작됐다.

박 이사는 기고글에서 "JTBC가 언론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단정했다.

정유라의 은신처를 찾아내 경찰에 신고한 JTBC 취재 과정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낸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의 기고글. [사진 미디어오늘 홈페이지]

정유라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JTBC 기자가 현지 경찰에 정씨를 신고하고 체포되는 장면을 촬영해 보도한 것이 '기자는 사건을 보도만 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겼다는 게 박 이사의 주장이다.

그는 "그(취재기자)가 시민으로서 신고하기로 했다면 보도를 포기했어야 했다"며 "만약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관찰자로 남았어야 했다. 그게 보도윤리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는 보도할 뿐 개입하면 안 돼"

박 이사는 "행동하는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기자의 역할은 다르다"며 정씨를 경찰에 신고한 JTBC 기자의 행동을 비판했다.

이론적인 시각으로 보는 언론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미디어 비평 전문 매체인 '미디어스' 인터뷰에 응한 박진우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인들이 보도를 위해 일부러 사건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유라처럼 대부분의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비난을 덜 받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변상욱 CBS 대기자의 트위터. 변 대기자는 JTBC의 정유라 취재 과정에 대한 기자 윤리 위반 비판을 반박했다.

반면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유라가 명백한 범죄자이고, 도주의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정유라의) 신상에 대해 보도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최근 칠레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함정취재를 통해 폭로한 칠레 주재 한국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 보도를 예로 들었다.

그는 "논란이 되긴 했지만 저널리즘 윤리에 어긋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순수 취재? 탁상논란일 뿐"

오랫동안 언론 현장에 몸담아온 변상욱 CBS 대기자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기자 윤리 위반이란 주장을 일축했다.

변 대기자는 "전두환 정권때 양심선언하고 경찰에 쫓기는 군 내부고발자를 CBS 사무실에 숨겨주고, 박노해 시인의 정체와 은신처를 취재하고도 특종을 포기했다"며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그는 "사건에 개입되지 않는 순수 취재? 탁상논란일 뿐 언론이 침묵과 왜곡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마당에 무슨…"이라고 지적했다.

'기자는 관찰자여야 하는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언론계의 오랜 논쟁거리다.1994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굶주린 아이와 독수리' 사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참상을 취재하던 사진기자 케빈 카터가 굶주려 생명이 위태로운 소녀와 소녀를 노려보는 독수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케빈 카터는 이 사진으로 수단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했지만 아이를 제때 구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시달리다가 퓰리처상을 수상한지 3개월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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