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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기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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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달 중앙일보가 보도한 "중국학계가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 5년간 약 3조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라는 기사는 충격이었다. 중국의 역사 왜곡 작업의 시작으로 봐도 무방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은 이미 발해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조작해 놓았고 최근 지린대학.랴오닝대학 등 대학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교재에는 우리의 고조선사를 자기들의 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제 엄연히 객관적인 사료가 증명하는 고구려사마저 중국사로 만들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는 한국을 아예 역사가 없는 나라로 격하시키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우리 정부나 학계가 아무런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수천년 민족사를 고스란히 탈취당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이는 너무 한심해 보인다. 중국의 경우 우리의 '동북아 중심국가 다짐' 그 자체를 놓고 용어를 트집잡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항의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오늘 한국 사회는 여러 가지 심각한 병폐를 드러내고 있다. 그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정확한 역사의식의 결여라고 생각한다. 광복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민사관의 잔재를 탈피하지 못한 채 제 역사를 부정하고 깎아내리는 역사교육으로 일관한 것이 민족 정체성의 결여를 가져왔고 이것이 결국 자신감과 긍지의 상실로 이어지고 말았다.

"고구려는 한(漢)이 세운 '한'의 지방정권이 아니라 '한'이 수립되기 훨씬 이전인 하(夏)의 우왕(禹王)시대에도 중국에 이미 존재했다.(朝鮮句麗諸國禹時實皆在靑域)"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중국의 경.사.자.집(經.史.子.集)에서 발췌해 지금 4책으로 출판을 준비중인 '사고전서(四庫全書)중의 동이사료(東夷史料)'의 '경패(經稗)'라는 책에 나오는 기록으로 한국사 지키기의 희망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고구려 역사를 지키는 일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중국처럼 3조원은 차치하고 3백억원이라도 투자해 이를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새로 들고 나올 대응논리에 더 적극적이고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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