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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제1장>하늘과 대지(33)|소설민족생활사 백두산<3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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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금 조선에 급변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예와 맥의 연합군이 아리강의 지류인 모래강을 넘어서 남쪽으로 진출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진번과 임둔을 차지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들이 아리강 중류를 차지하고 나면 반드시 동으로 나와 검은강을 건너 청구의 한복판을 위협할 것입니다.
청구에서는 곧 예와 맥의 행동에 대응하기로 하였으니, 동호 당의 한 검바우와 유와 발의 연합군이 예의 동북방을 들이치고 한 온수리의 병력은 애터를 수비하며, 큰한 덕은 비장홀과 더불어 검은강 북편의 맥의 대읍으로 짓쳐 들어가도록 정하였다. 출정하기 전에 조선에 이를 알려서 조선군이 예맥의 연합군을 모래강에 묶어 두도록 알렸다. 일찌기 덕이는 예 땅에서 전사로 몸을 일으켰으며 그 알병의 장처와 약처를 잘 알고 있었던 터였다. 또한 예와 맥이 힘을 합하여 아리강 남쪽으로 이동하였으니 북쪽이 비어있을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고, 일이 잘되면 늘 비어 있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던 유 당의 서쪽을 차지하여 강화시킬 수가 있었다. 또한 청구로서는 서쪽을 진압하여야만 동쪽의 너른 천지로 뻗어 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조선으로서는 아리강 동쪽을 넘어서 바다를 따라 진출하여 동북으로 뻗어 나가기 전에는 마치 좁은 자루속에 갇힌 형국이던 것이다. 따라서 청구가 서로 동맹을 맺은 상대라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는 또한 조선에는 마치 가슴에 돌이 얹힌 듯 답답한 상대가 청구이기도 하였다.
세상에 알려져 오기를 예는 긴창과 철퇴를 써서 밀집보병이 군진을 형성하여 싸운다 하였고, 맥은 말을 타고 활을 쏘면서 날래게 이동한다 하였으며 돈피 갑옷으로 상반신읕 싼다고 하였다. 이미 예의 전법과 진 치는 법은 내가 잘아는 터이다. 벌써 나와 함께 예의 땅에서 백장으로 있던 동호의 한 검바우가 유와 발의 연합군을 이끌고 나갈 것이니 갈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리가 맥의 기법을 이기려면 구리 투구와 갈고리 창과 큰 가죽방패가 아주 요긴하다. 그뿐만 아니라 예와 맥은 흙과 돌을 물에 개어서 높고 튼튼한 성을 쌓는다. 맥의 토성은 공성구나 화공으로 깨뜨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일단 나오면 말 타고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우리를 공격할 것이요, 불리한 즉 강고한 토성에 틀어박혀서 활을 쏘아 성벽에 접근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덕이가 의견을 말하였고 상 설이 안을 내었다.
염려할 것이 없읍니다. 원래 싸움이란 물자와 인명을 많이 소모한 독이 지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맥의 군사를 끌어내면 됩니다. 저들이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는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거나 강력한 밀집보병으로 기법을 궤멸시킵니다. 저들이 성 안에 틀어박히면 전야의 농작물들을 불태워버리면서 곧 이동해버립니다. 맥은 농산물이 보잘 것 없어 생선과 사냥한 고기로 양식을 하는 고장이 많습니다. 저들은 옷감도 넉넉지 못하여 가죽에 베를 이어서 옷을 만들어 입는데 삵과 여우의 가죽을 쓴다고 합니다. 그 위에 다시 돈피갑옷올 입는다면 원거리에서 활을 쏘아서는 화살이 살을 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신을 가릴만한 큰 가죽방패를 세워 적의 기법을 바짝 근접시킨 연후에 살진 안에 몰아넣고 갈고리 창으로 말에서 떨어뜨리면 됩니다. 구리투구와 창은 반드시 적의 기법과 활을 이길 수 있는 병기입니다.
비장 홀도 말하였다. 적의 돈피 갑옷도 별게 아닙니다. 불 붙인 화살로 쏜다면 반드시 날아가 가죽 위에 꽂혀서 갑옷을 태울 것입니다. 또한 작의 기병은 적당한 거리에서 말을 달리면서 우리를 공격할 것이요. 우리 기병은 말 잔등에 엎드려 방패로 몸을 가리고 재빨리 적진 속으로 쳐들어가 갈래창과 검으로 적을 찌르고 벨수 있읍니다.
그러면 기병과 보병과 궁수를 이렇게 나누기로 하지. 기병은 갈래창과 동검을 차고 방패를 사용하며, 보병은 갈고리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궁수는 기름과 화전을 준비한다.
이의 말에 다시 붙였다. 예와 맥은 전차도 쓰고 있습니다. 이는 예가 대하 남쪽의 당뇨 에게서 받아들였던 병기입니다.
덕이 웃으면서 답하였다. 내가 이미 전사 시절에 겪은바가 있지만 전차는 기병에게만 유리하지요. 전차가 달려 나오면 각 진이 방패로 몸을 감싸고 창을 밖으로 내밀어 몇개의 무리로 뭉치면서 길을 열어줍니다. 전차는 말이 끄는 것입니다. 먼저 그 말을 공격하면 아무슬모가 없읍니다. 우리는 무기는 강고하게, 복장은 간편하게 하여 맥의 기사(기사)를 분쇄할 수가 있습니다.
청구에서 곧 군사를 일으켜서 남쪽 검은강의 상류로 진군하는데 청구군은 기병은 구리 투구를 쓰고 구리 조각이 박힌 포를 옷 위에 걸쳤다. 그리고 한팔에 가죽방패를 들고 한 손에는 긴 갈래창을 세워 들었고 허리에 동검을 찼다. 보병은 갈고리 창을 들고 거의 사람의 키만한 긴 방패를 들었으며 저고리와 바지는 베에다 솜을 댄 것이라 몸이 가뿐하였다. 궁수는 강궁과 학전이 가득한 전통을 허리에 차고 역시 큰 방패를 가졌다. 그들은 각자의 양식을 허리와 어깨에 두르고 되도록 군량이나 병기를 실은 수레의 수를 줄이도록 하였으니 이는 이동하기에 간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청구군의 진군은 마치 바람 같아서 맥 군의 초소에서도 미처 눈치를 채지 못하였고 그들은 거의 접전도 치르지 않고 검은강의 상류를 건너서 평천 대읍쪽으로 진출하였다. 도중에 제법 큰 마을과 읍이 있었지만 청구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재빨리 지나쳤다. 맥의 마을연합에서는 이 소식을 사방에서 대읍으로 전하였고 아리강 하류로 진출한 전력을 뺀 수비군들이 무강을 수습하여 대읍 외곽으로 나왔을 때에는 벌써 청구군이 수십리 밖에 진격하여와있을 때였다.
맥의 한이 천호장들을 거느리고 나올제 그들은 가죽 옷에 가죽 갑옷을 입고 강궁을 어깨에 메고 긴 창을 가졌다.
또한 두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 위에는 창을 여러 개 꽂고 양 옆에 방패를 세운 장수가 말 고삐를 잡은 전사와 함께 타고 있었다. 들판 위에는 양군의 깃발이 울긋불긋한데 창검이 번쩍였고 말울음 소리가 요란하였다. 청구군은 맨 앞쪽에 방패와 갈고리창을 가진 보병이 늘어 섰고, 그 뒤에 기병이 긴 창과 방패를 들고 말에 타고 있었으며, 다시 뒷줄에는 궁수가, 그리고 맨뒤에 보병이 늘어서 있는 형세였다. 북소리가 울리면서 필률과 쇠를 치는 소리가 드높게 울리자 청구의 보병 열은 오와 열을 맞추어 행진해 나아갔다. 맥진에서도 북소리가 울리며 전차를 선두로 기병 열이 행군하여 나왔다. 다시 북소리가 요란해지면서 전차가 질풍처럼 달려 나왔고 기마대는 그 뒤로 일정한 속도로 따라왔다. 청구군 쪽에서는 전차가 달려나오자 일시에 방패의 간격을 붙이면서 몇몇의 무리로 진을 짜며 길을 터주었다. 전차는 창을 던지면서 곧 보병진의 뒤로 빠져 나갔고 보병은 열을 바꾸어 처음처럼 강사진으로 늘어섰다. 청구군 보병의 뒷전에 있던 기병들도 보병들과 함께 그 후미에 찰싹 붙어서 전차의 진로를 열어 주었다가 다시 합쳐졌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던 궁수대가 달려오는 전차의 말을 바라고 일시에 집중적으로 화살을 날렸다. 거의 반이상의 전차가 중도에 뒤집히거나 저희끼리 부딪쳤고, 나머지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궁수들은 재빨리 양쪽으로 흩어져 보병들의 뒤로 숨어버리고 밀집보병들은 곧 전차를 여기저기서 에워싸며 갈고리창으로 말과 기수를 공격하였다. 전차위에서 던진 창들은 보병들의 큰방패에 맞아 미끄러졌으나 보병들은 전차를 둘러싸고 사방에서 기수들을 끌어내려 살해하였다. 궁수들은 다시 이 전투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섰다. 맨 뒷열의 보병들도 흐트러졌던 열을 가다듬으며 궁수의 후열을 이루고 있었다. 맥의 강대한 기병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활을 연거푸 날리면서 달려들었다. 뒷열의 궁수들은 앞으로 달려나와 화전에 불을 댕겨 맹렬하게 쏘았다. 화전은 돈피 갑옷에 꽂히기도 하고 말을 맞히기도 하였으나 맥군은 긴 창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이어서 궁수가 물러나고 청구의 기병들이 갈래창과 방패를 쳐들고 마주 달려갔다. 맥군은 뒤늦게 불붙은 갑옷을 벗으려고 땅바닥에서 뒹구는 자, 놀란 말위에서 떨어지는 자로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었고 청구군은 이들을 사살하면서 뚫고 들어갔다. 방패와 갈래창은 기마전에 매우 유용하였다. 적이 튼튼한 가죽 갑옷으로 몸을 싸고 있다하나 날렵하지 못한 대신에 청구기병은 방패로 몸을 가리고 머리에 투구만을 쓰고 있으며 가벼운 베옷을 입고 있어서 행동이 민첩하였다. 또한 갈래창은 상대의 창을 걸어 젖히고 적을 말에서 끌어 내리기가 편리했다. 또는 방패로 몸을 가리고 접근하여 동검으로 적의 하반신이나 목 윗 부분의 급소를 찌를 수가 있었다. 기병은 엇갈려 지나갔고 남은 기병들은 곧 뒤이어 몰려오는 두겹의 밀집보병들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청구보병들은 전차를 공격할 때처럼 키만한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갈고리창을 내밀어 기수들을 끌어 내렸다. 유목 부족인 동호가 바로 이런 식으로 궤멸되었던 것이다. 뒤 미처 깨달은 맥의 장수들이 황급히 군사를 거두어 대읍의 토성으로 퇴각하였으나 그때에는 벌써 병력이 반 이상을 손실했을때였다. 맥의 대음 수비를 맡았던 한은 토성에 숨어서 활을 날리면서 나와서 싸우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청구군은 멸찍이서 둘러싸고 지켜볼뿐 더이상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대읍 근처의 전야에서는 사방에서 불길과 연기가 솟아 올랐다. 청구군은 대음 성 주변에 흩어진 마을과 전야를 모두 불태웠다.
한편 조선군은 서북방변경의 모래강에서 예와 맥군의 도하를 막아내느라고 힘을 다하여 싸우던 중이었다. 전령이 달려와 청구군의 출병을 알렸고 그들이 비어있는 맥의 대읍과 예의 북방 요충지를 동시에 위와 아래에서 들이친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한 배는 모래강 방어를 우에게 맡기고 곧 군사를 나누어 우회하여 고죽으로 향하였다. 그는 우에게 일렀다.
이곳을 이틀쯤 막고 있다가 남쪽으로 바짝 끌어 들여라. 저들이 들어오면 우리는 예의 남폭 요충지인 서무를 점령하고 퇴로를 끊으며, 한편으로는 고죽 옥저군과 더불어 맥의 남쪽 요충인 희봉읍을 공격한다. 거기서 우리는 청구군과 만나게 될 것이다.
한배는 기병 천여병력만 이끌고 영지로 달려갔다. 거기서 그는 옥저의 한이 군사를 이끌고 서무를 공격하도록 이르고 자신은 고죽의 한과 함께 난하 중류쪽으로 진출하였다. 우는 모래강을 막고 버텨다가 밤중에 동남쪽으로 급히 퇴각했다. 예와 맥의 연합군은 물밀듯이 강을 건너서 조선 서북쪽 영지를 압박하였다. 그때에는 우는 서무로 군사를 돌려서 옥저군과 합세하여 서무를 공격하고 있을 때였다. 서무는 매우 강고한 토성이었으며 일찌기 예가 발해쪽과 당요쪽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개척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한밤중에 당도한 조선군은 사다리를 걸고 성벽에 올라 야습을 감행하여 서무를 하룻밤 사이에 점령하고 말았다. 예맥군이 영지를 포위 했을때 전령이 달려 들어와 급보를 알렸다. 북으로 승덕이 공격당했으며 동으로는 맥의 대음이 초토화되었고 청구의 대군이 맥의 여러 음들을 휩쓸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예맥군은 급히 군사를 돌려 서무 성으로 가서 한숨 돌린 뒤에 예군은 거기서 대읍으로 회군하고 맥군은 난하를 건너 희봉성으로 가서 청구군을 몰아낼 전력을 갖추고자 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예맥의 연합군은 서무로 들어가는 도화 근처의 강변에서 매복해 있던 조선군에 걸려들었다. 우는 강에다 뗏목으로 다리를 놓아 두고 강변 멀찍이 군사를 매복해 두었으니 강변의 갈대밭이 화공에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적의 척후는 강을 건너와 사방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인근에는 적이 없다고 여기고는 본진을 이끌어왔다. 적의 기병이 다리를 먼저 건너서 강의 북쪽에 방어선을 치고 본진이 강을 건너 강변에 이르렀으며 후진은 아직 강을 건너는 중에 조선군은 화전을 맹렬하게 날리면서 달려들었다. 그들은 병장기와 숱한 인마를 잃고 하는 수 없이 강 건너로 도로 쫒겨갔다. 예맥군은 하는 수 없이 서무로 나가는 길을 포기하고 희봉으로 향하였으나, 서무를 이미 점령하고 있던 조선 옥저군은 난하 중류인 아리강쪽으로 그들을 몰면서 급히 추적해왔다. 희봉에는 한배가 거느린 조선 고죽군이 이미 성읍을 점령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예맥군은 좀은 그물 속에 갇힌 꼴이 되었다. 다만 서무와 희봉 사이의 비좁은 들판으로 빠져나갈 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예의 한과 맥의 큰한은 아리강 중류의 통로를 빠져 나가면서 보병과 기병의 태반을 잃었다. 그리고 맥군은 감히 대읍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단 예의 대읍으로 동행하여 겨우 목숨만을 보존할 수가 있었다.
이가 거느린 청구군은 맥의 당을 거의 휩쓸면서 남하하여 희봉성에 이르러 한배의 조선군과 합세하였다. 아직 예 땅은 보존되고 있었지만 맥은 거의 몇년간 출범할 수 없도록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셈이었다. 그러나 청구군은 맥을 정벌한다는 구실로 검은 강을 건너 조선의 판경을 지나 고죽에 가까운 곳까지 진출했던 것이다. 덕이는 한배와 더불어 막료들을 거느리고 한 영막에 앉아서 음식을 먹었다. 덕이가 호기있게 말하였다.
맥의 땅은 이미 힘을 잃고 말았네. 어떤가 이 길로 조선 청구군이 쳐들어가 맥의 큰한을 누르고 새로운 관경을 정할 수가 있네.
그러나 한배는 조용히 술을 마실 뿐이었다.<그림 강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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