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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 “어두웠던 청춘…음악 없었다면 난 쓸모없는 사람 됐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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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다 지나간다. 모두 잊혀진다. 시간은 흐른다. 상처는 아물어 사라진다.’

가수 김윤아와 함께한 신문콘서트
초등학교 때 동요 숙제하다 재미
혼자 곡 쓰고 노래하며 음악 빠져
대학 때 밴드 들어와 20년째 활동
요즘은 청춘에게 참 힘든 시절
우리가 기댈 건 자신과 옆사람
잘 버티고 서로 지지해야죠

가수 김윤아(43)씨의 4집 앨범 ‘타인의 고통’에 담긴 ‘다 지나간다’의 노랫말 중 일부다. 자신의 곡 중 지난해(2016년)와 가장 어울리는 곡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에 꼽은 노래다.

“아토피가 심한 사람은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하잖아요. 지금이 딱 그런 느낌이랄까요. 뭔가가 좀 필요하죠? 뭔가가 필요하네요. 모두에게….”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김윤아씨와 함께한 중앙일보 신문콘서트는 2시간30분간 이어진 ‘치유의 시간’이었다.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Going Home),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꿈), ‘너는 반짝이는 작은 별, 아직은 높이 뜨지 않은. 생이 네게 열어줄 길은 혼란해도 아름다울 거야’(Girl talk) 등 김씨의 노래에는 청춘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콘서트가 열린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는 200명이 넘는 20~30대 청년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가득 메웠다.

‘불안’을 이야기하는 청춘들에게

지난해 12월 26일 열린 중앙일보 신문콘서트에서 가수 김윤아씨와 사회를 맡은 정강현 JTBC 기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씨는 이날 콘서트를 찾은 20~30대 관객들에게 “무슨 일을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지난해 12월 26일 열린 중앙일보 신문콘서트에서 가수 김윤아씨와 사회를 맡은 정강현 JTBC 기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씨는 이날 콘서트를 찾은 20~30대 관객들에게 “무슨 일을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김씨가 무대에 오르기 전 사회를 맡은 정강현 기자는 잠시 관객들과 자유롭게 얘기를 나눴다. 이날 20~30대 관객을 관통한 단어는 ‘불안’이었다. 대학생 이용안(26)씨는 “2017년에 코스모스 졸업하고 취업해야 하는데, 무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된다. 청년들이 소위 스펙을 쌓아 남들과 차별화하려고 발악하는 모습을 볼 때면 청년이란 단어조차 20대에겐 사치로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취업준비생인 정빛나(23)씨는 “요즘 들어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아이는 가질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보다 더 잘살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한다. 갈수록 세대를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속마음을 꺼내놓자 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환호하는 객석을 향해 김씨는 해맑게 웃으며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그는 무대 위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자분자분 이야기했다.

“제가 20대 초중반일 때만 해도 ‘적당히 열심히 하면 적당히 남들만큼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새는 참 많이 변했어요. 사회에 나오는 순간부터 이미 학자금 대출 같은 짐을 진 상태잖아요. 이런 세상에서 음악을 한다는 게 비생산적인 것 같아 죄스러울 때도 많아요.”

객석에선 곧바로 “비생산적인 것 같아 죄스럽다”는 김씨의 말을 부정하는, 애정 가득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다시금 웃어 보인 그는 자연스레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겼다”

김윤아

김윤아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음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요를 만들어 오라”는 담임 선생님의 숙제가 정말 재미있었단다. 이때 만든 김씨의 첫 자작곡 제목은 ‘동산’. ‘오늘도 동산에서 친구를 찾는다’는 가사로 시작한다. 그때부터 취미로 곡을 쓰고 노래를 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음악을 제대로 시작한 계기가 뭔가.
“고등학생 때 과외 선생님과 음악 얘기를 많이 했다. 대학 입학 후 선생님이 ‘밴드를 같이하자’고 연락해와 합류했다. 그때 만난 드러머가 현재 밴드 자우림의 구태훈(45)씨다. 당시 난 건반을 치거나 중간중간 코러스를 넣었다.”
지금의 자우림은 어떻게 결성됐나.
“2학년이 되니 남자 멤버들이 하나둘 입대하면서 밴드가 흐지부지됐다. 그래서 PC통신 ‘나우누리’의 음악동호회에 가입해 기획밴드를 했다. ‘올드 락(Old Rock)’ 동호회였는데 그때 만난 멤버들이 김진만(45)·이선규(46)씨다. 두 사람을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자유롭고 순수하다’고 느꼈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했고, 여기에 태훈 오빠까지 합류하면서 자우림의 전신이 완성됐다.”

자우림(紫雨林)은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이란 뜻이다. 데뷔를 앞두고 팀 이름을 고민하다 김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색과 이미지를 조합해 지었다. 다른 멤버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데뷔가 코앞이라 대안이 없었다. 그렇게 1997년 첫 앨범을 냈고, 소위 ‘대박’을 쳤다. 그리고 어느새 자우림은 데뷔 20년을 맞는 장수 밴드가 됐다. 김씨는 밴드와 솔로 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돌이켜보니 자연스러운 흐름에 저를 맡겼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의 직업을 가지지 못했다면 사회적으로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 됐을 거예요.”

“연애하세요, 결혼하면 못하니까”

20대 때 김씨의 주된 관심사는 ‘연애’였다. “연애를 많이 하세요, 연애가 제일 좋아요. 결혼하면 못하거든요.” 김씨의 말에 관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씨는 2006년 6월 치과 의사 김형규(41)씨와 결혼해 아들 민재(10)를 낳았다.

그는 “내 청춘은 어두웠다”고 했다. 그 어두움이 음악을 시작한 바탕이 됐고, 음악을 하며 많이 치유가 됐다고 김씨는 말했다.

“어릴 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못 받았어요. 사람하고 관계 맺는 법도 서툴렀고요.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결코 좋은 경험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예상치 못했던 김씨의 고백에 관객석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대학생 최무빈(19)씨는 “학창 시절에 많이 어두운 편이었는데 엄마는 늘 ‘S대 가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하셨다. 그래서 정말 그 학교에 갔는데 정작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듣고 있던 김씨는 “‘옆에 있는 친구를 밟고 올라가야 해. 그래야 네가 승리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살다 보니 행복하게 사는 법을 자꾸 잊게 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추운 날씨 탓인지, 뉴스 탓인지 영 힘이 나질 않네요. 지금 우리가 기댈 건 자기 자신,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우리 잘 버티고 서로 지지합시다.”

김씨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다 지나간다. 다 잊혀진다. 상처는 아물어 언젠가 꽃으로 피어난다.” 그의 노랫말이 공연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글=홍상지·윤정민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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