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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 채운 정유업계 공격경영…SK이노 “올 3조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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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경기 침체, 탄핵 정국 등 여파로 재계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정유·반도체 등 일부 호황 업종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분위기 반전을 이끌고 있다.

대표적인 게 SK그룹의 에너지·화학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김준 총괄사장이 주재한 경영진 회의에서 화학·석유개발·배터리 사업 등에 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1일 발표했다. 2016년 8000억원에 비하면 투자액이 4배가량 늘었다.

작년 호황 바탕, 투자액 4배 늘려
화학·석유개발·배터리 등에 집중
‘삼성의 하만 인수’급 M&A도 추진

김 총괄사장은 경영진 회의에서 “2017년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과감한 전략적 투자를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발굴하자”고 강조했다.

SK가 꼽는 전략적 투자의 핵심은 대규모 인수합병(M&A)이다. 우선 화학·석유개발 사업 분야에서 국내외 유력 기업과 M&A하거나 지분을 인수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의 상하이세코 지분 인수가 M&A 물망에 오르내린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최대주주인 BP의 상하이세코 보유지분(50%) 가치를 2조원 안팎으로 평가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것 같은 ‘빅 딜’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사업도 확대한다. SK종합화학은 최근 글로벌 사업 전략을 총괄하는 글로벌마케팅본부를 중국에 신설했다. SK종합화학은 2015년부터 최고경영자(CEO)와 주요 임직원을 중국 현지에 전진 배치해왔다. SK이노베이션 석유개발사업 부문은 본사를 미국 휴스턴으로 옮기고 사업대표 등 주요 인력을 전진 배치하기로 했다.

국내에선 전기차 시장 확대 등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배터리 사업을 확장한다.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에 5~6호기 2개 라인 증설을 추진 중이다. 충북 증평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LiBS) 공장 설비도 증설 중이다. 신규 인력 채용도 늘리기로 했다. 향후 5년간 대졸 공채와 기술직 신입사원 등을 합쳐 1200여 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올해 대졸 공채 신입사원 100명 이상, 신사업 확대 등을 위한 경력·기술직 신입사원도 120명 이상 뽑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에 이어 다른 정유 업체들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16년에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3조4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분석된다. 연간 기준으로 지난 2011년 영업이익(2조842억원)을 넘어선 사상 최대치다. GS칼텍스(1조6400억원)·에쓰오일(1조6500억원)·현대오일뱅크(9300억원)도 지난해 좋은 실적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정유 4사 누적 영업이익(5조6862억원)은 이미 2015년 영업이익(4조7321억원)을 넘어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합의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 글로벌 수요 회복으로 인한 정제마진 상승, 동남아 등 신시장 개척으로 인한 수출 증가 등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린 이유로 꼽힌다. 특히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정유사는 ‘시간차’ 이득을 내고 있다. 원유를 수입해 정제하는 데 통상 40일쯤 걸린다.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을 만드는 동안 국제유가가 오르면 팔 때 시세에 맞춰 값을 더 받을 수 있다. 1일 기준 휘발유값은 L당 1486원을 기록했다.

미국·인도 등 석유제품을 많이 쓰는 국가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면서 정제마진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도 실적을 끌어올렸다. 현재 정제마진은 배럴당 7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정제마진(배럴당 5달러)에 비해 40% 늘었다. 통상 배럴당 4~5달러가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이다. 정유사 실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석유화학 제품 시장 호조도 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 편중한 수출을 호주·동남아 등으로 확대하고 튀니지·콜롬비아·우크라이나 등을 새로운 수출처로 확보한 점도 좋은 실적을 이끌어낸 요인으로 작용했다. 덕분에 수출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10월 석유제품 수출량은 총 4억737만 배럴이었다. 2015년 같은 기간 수출량(3억9792만 배럴)보다 900만 배럴 이상 증가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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