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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시 공시’ 의무화, 투자자 피해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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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를 다룬 중앙일보 10월 4일자 1면.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를 다룬 중앙일보 10월 4일자 1면.

내년부터 상장기업은 계약 해지같은 주요 정보는 시간을 끌지 말고 바로 공시해야 한다. 투자자를 울렸던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와 유사한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다.

늑장 공시 ‘제2 한미약품 사태’ 없게
내년 1월 2일부터 공시 규정 강화
정정 사항 발생 땐 무조건 당일 공시
위반 때 제재금 상한액 5배로 올려

한국거래소는 내년 1월 2일부터 강화한 공시 개정안을 시행하기로 했다. 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때 무는 벌금도 많아진다. 그동안 기업은 공시 제도의 빈틈을 이용해 늑장 공시를 하더라도 별도의 제재를 받지 않아 투자자들만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공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공시 제도의 강화로 이어진 변화를 촉발한 한미약품 사태는 지난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미약품은 9월 29일 오후 7시 6분 거래 상대방(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회사에 불리한 내용을 통보받는다. 8500억원대의 기술 수출 계약이 해지된 것이다. 다음날 주식시장이 열린 뒤 소식이 알려지면 주가가 떨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지만 회사는 이 내용을 다음날 장이 열린 뒤 29분 후에야 공시했다.

이에 앞서 29일 오전 8시 이 회사는 제넨텍과 1조원대 기술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고, 이날 오후 4시 33분에 이 내용을 공시했다. 밤사이 발생한 악재를 알 길이 없는 투자자들은 30일 장이 열리자마자 주식을 사들였고, 이후 악재 공시가 뜨자 주가는 폭락했다. 결국 투자자들은 최대 25%의 원금 손실을 입게 됐다.

호재는 당일, 악재는 다음날 장이 열리고서야 공시했지만 이 회사는 금융당국으로부터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현행 한국거래소의 공시 규정에 따르면 ‘기술도입·이전·제휴 등과 관련한 사항’은 자율 공시 대상이기 때문이다. 자율 공시의 경우 다음날 오후 6시까지만 공시하면 되고, 이 내용을 정정공시 할 때도 다음날까지만 공시하면 된다. 한미약품의 경우 베링거인겔하임측과의 계약 내용이 자율 공시 대상이었기 때문에 정정공시인 계약 해지 내용도 다음날 공시하면 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경우도 제재 대상이 된다. 한국거래소 측 관계자는 “한미약품 사태를 막기 위해 원 공시에 상관없이 정정 공시는 당일에 하도록 규정을 손봤다”고 설명했다. 또 기업이 정당한 이유 없이 임의로 공시를 지연시키지 않도록 규정에 ‘적시 공시’ 원칙을 명문화했다.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 부여하는 벌금 규정도 강화됐다. 진동화 한국거래소 공시제도팀장은 “불성실 공시에 대한 제재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현행 제재금 상한을 5배로 늘렸다”고 밝혔다. 현재 코스피 상장 법인의 경우 2억원, 코스닥 상장 기업의 경우 1억원인 제재금의 상한을 각각 10억원과 5억원으로 늘린 것이다. 단, 기업의 부담을 감안해 해당 내용은 내년 4월 3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은 특히 코스닥 상장 법인에 대한 공시 규정을 강화했다. 유상증자 일정을 공시해 놓고 6개월 이상 납입을 연기할 경우 불성실공시로 제재를 받게 된다.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유발한 뒤 실제로는 납입을 연기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코스닥 상장법인이 최대주주 변경이 예상되는 계약을 체결할 경우, 변경될 주주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자세히 알려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현재는 최대주주의 변경이 완료된 경우에만 공시하면 된다. 한국거래소 측은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경우 최대주주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기업에 공시의 자율성을 부여하되 사후 처벌을 강화해 기업이 스스로 불성실 공시를 할 경우, 경제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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