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들 "한국가도 괜찮으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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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위의 격화와 장기화로 수출등 경제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를 찾던 바이어들이 대만·홍콩 등으로 빠져나가고 우리나라에 공장을 짓겠다던 구미합작선들이 발길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모처럼 가속이 붙었던 수출수요 증가에 응하기 위해 시설확장을 서두르던 기업들중에는 투자계획을 미루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례도 있다.
이 같은 일련의 변화는 아직 크게 걱정할 정도로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정국 향방 여하에 따라 모처럼 쌓아 올린 경제 성장기반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공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주 초까지만 해도 하루 1억달러를 넘던 신용장 (LC) 내도액이 지난 19일부터 뚝 떨어져 19일에 6천1백만달러, 20일 9천5백만달러, 22일에는 8천만달러어치를 접수하는데 그쳤다.
지난 주초만 해도 15일의 1억4천6백만달러를 비롯, 16일 1억8백만달러, 17일 1억5백만달러, 18일의 1억8백만달러등 1억달러를 밑돈 일이 없었다.
이 같은 통계숫자보다 더 피부에 와 닿는 얘기는 종합상사를 비롯, 국내수출업계가 겪고있는 바이어들의 계약취소나 방한기피 움직임이다.
요즘 종합상사들의 국제전화선은 『예정대로 한국에 가도 괜찮겠느냐』는 바이어들의 문의전화로 바쁘다. 그 중에는 아예 방한일정을 취소해 버리거나 하와이·일본·대만·홍콩 등 제3국에서 만나자고 요구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관계자들의 얘기다.
종합상사인 H물산의 한 관계자는 구미의 바이어들이 전에는 한국에 먼저 와서 주문을 끝내고 귀로에 대만이나 홍콩에 들러 나머지 구색을 갖추기 위한 상품을 주문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요즘에는 대만·홍콩을 먼저 들렀다가 조심스레 한국을 찾거나 그곳에서 아예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듯 최근의 대북발 로이터통신은 한국으로 수입선을 돌렸던 구미수입상들이 다시 대만을 찾기 시작, 섬유·의류·플래스틱제품·신발 등의 수주가 10∼2O%늘고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대우중공업으로부터 발전기를 사겠다고 지난13일 방한했던 호주건설중장비 구매단은 공장시찰을 가던 중 시위사태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는 상담을 중단, 그대로 귀국해 버리기도 했다.
한일스포츠사는 미국 측과 라겟 합작공장을 설립키로 하고 사전협의를 모두 끝내고 계약서 서명만 남은 상태에서 최근 미국상대방으로부터 88올림픽 이후로 계약을 미루자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
전자부품 메이커인 D사는 미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계약 체결을 위해 서울에서 상대방과 만나기로 돼있었으나 최근 계약장소를 하와이로 바꾸자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내수시장도 어려움을 겪고있다. 릇데백화점의 경우 6월초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매상이 7억원대에 달하던 것이 최근에는 5억원 전후로 떨어졌고 남대문시장의 지방 중간상을 대상으로 하는 도매상에는 하루 4천∼5천명이 찾던 고객의 숫자가 2천명 내외로 반감됐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택시운전사들도 평소 5만원대의 수입금액이 10%정도는 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외국관광객의 감소로 외국인이 많이 찾는 이태원상가 상점들도 20∼30% 매출이 줄었고 하루 평균 5백명의 외국인이 찾던 롯데면세점의 고객도 6·10 이후 4백명선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이 같은 수출시작과 내수시장의 동시적인 수요감퇴가 기업인들의 투자 마인드를 위축시키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될 수 있다.
우리경제는 그러지 않아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원화절상 행진·여신관리강화·3저요인의 변화 등 경제내적인 불안요인을 안고있다.
그위에다 경제외적인 불안사태가 계속되어 경제활동의 위축을 더욱 가속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의 실패로 경제도약의 기회를 놓치고 후진권에 주저앉은 사례를 우리는 중남미제국과 필리핀 등에서 여러차례 보아왔다.
선진의 문턱에 다가선 우리경제가 고속행진을 계속 하느냐, 뒷걸음질을 치느냐는 이제 정치권의 대타결 여부에 달린것 같다.<신성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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