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적 한국에서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그 사람들도 머리는 나무랄데 없이 좋은 사람들이었음은 틀림없다. 쓸만한 자동차도 만들어 본고장 미국시장에 내다팔아 적지 않은 외화도 벌어 들였다니 말이다. 어디 그 뿐인가? 강위에는 예쁘고도 견고한 다리를 무지개처럼 놓을 줄도 알았고, 더러워진 강물을 다시 깨끗하게 만들줄도 알았다. 63층이나 되는 높은 건물도 거뜬히 지어 놓았다.
그런데 그 때 사람들은 여러모로 지금의 우리와는 크게 달랐던 것 같다. 그들은 지금 우리에게는 없는 문제를 놓고 크게 고민한 모양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 똑똑한 사람들이 글쎄 대통령 뽑는 방법을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때 사람들은 두편으로 나뉘어 매일 싸웠으며 가끔 머리가 터지고 피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지금 우리로서는 이해하기도 힘들고 우습기조차한 일이지만 그 때 그 사람들은 이 문제를 놓고 아주 「심각」했던 모양이다.
운동경기를 해도 지고 이기는데서 생기는 재미와 드릴을 맛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하였다. 두 대학 사이의 농구경기는 걸핏하면 선수들간의 주먹싸움으로 변했고, 돈 내고 들어온 관중들도 돈을 되돌려 달라고 하기보다 맥주병이나 깡통, 심지어는 신고 있던 신발이라도 벗어 코트에 던짐으로써 싸움에 합세 하였다. 이게 모두 애교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애교심 앞에는 아까운 돈도, 신발도, 이성도, 그 어느 것도 맥을 못추었다.
애교심이 이 정도니 애국심은 어느 정도였는가 하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지금 우리라고 어찌 나라에 대한 사랑이 없겠느냐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애정처럼 온화하고 조용하며,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크게 떠들어 대는 사람은 이제는 아무데도 없다. 그런데 만사를 심각하게 생각하기를 좋아했던 그 때 그 사람들은 이 「애국」이야말로 조용히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건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라 사랑하기를 마치 젊은이가 애인 사랑하듯 정열로써만 하였다. 그러니 그 사랑이 시끄러웠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시끄럽고, 때로는 유치하고, 또 변덕스럽고. 그 때에도 시인들은 많았다. 너무 많았는지도 모른다. 많다보니 별의별 시인들이 별의별 글을 써가지고는 그것도 시라고 우겨댔다. 우선 아무도 읽고 사랑해 주지 않는 시를 쓰는 것이 그 때 시인들의 특징이었다. 진리가 꼭 어둠속에 있어야만 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채 이해하지 못하였나 보다. 어렵고, 복잡하고, 때로는 더럽고 음란한 말을을 써야만 시가 된다고 그때 사람들은 알았나 보다.
그 때의 정치인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들도 나라를 위하여 일한다는데는 지금의 정치인들과 다를바가 없었으나 나라를 위하는 방법과 태도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오늘의 정치인들은 즐겁고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지혜로써 나라를 위하여 일하지만 그 때의 정치인들은 무거운 위기의식과 심각한 사명감, 그리고 정열하나로써 나라를 사랑하였다.
그 때 사람들이 특벌히 사랑하고 애용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감옥이었다. 「감옥」하면 지금 우리로서는 그 소리만 들어도 섬뜩해지고, 그 곳은 살인범이나 도둑놈, 아니면 사기꾼들이나 가는 곳으로 알고 있으나 그 때 그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그 때 사람들은 그곳에 다른 사람들을 보내기를 퍽이나 좋아 했으며, 더욱 놀라운일은 그곳에 가는 것을 오히려 명예스럽게 생각하여 자주 찾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정치 지망생들에게 감옥은 대학에서의 전공필수과목 같은 것이었다.
이 모두가 이미 오래 오래 전에 한국에서 있었던 옛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그 때 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과 일본간의 축구경기도 재미로 보지만 애국심과 연결시켜 보지 않는다.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얻은 선수는 기술과 기량이 뛰어난 운동선수이지 전쟁터에서 돌아온 용사는 아니다. 시인들은 쉽고, 간단하고, 분명한 말로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고 거기서 얻은 지혜를 가르쳐 주는「읽히는 시」를 쓴다. 이제 심각한 얼굴을 한 정치인들은 찾아보려야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계속해서 며칠간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지 않은 이유로 아내로부터 이혼통고를 받은 국회의원을 제외하고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