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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맛이 최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4호 29면

“당신에게 맛있는 음식이란 무엇입니까?”


이 물음은 어찌 보면 대단히 철학적이다. “삶에서 당신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어떤 겁니까?”라는 질문과 맥이 통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프랑스 최고의 요리학교로 꼽히는 ‘르 꼬르동 블루’를 다녀왔다. 에펠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세련된 디자인의 현대식 건물이었다. 유럽에서도 프랑스는 ‘요리의 나라’로 꼽힌다. 봉건제 사회 때는 더 했다. 왕족과 귀족들은 ‘최고 중의 최고’만 찾았다. 그 와중에 궁정 요리사들의 실력과 요리의 수준은 더 발전했다. 이때만 해도 ‘최고 요리’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1794년 막을 내린 프랑스 혁명은 궁정 요리사들이 궁 밖으로 나오게 했다. 바깥으로 나온 ‘궁정의 맛’을 시민들도 체험하기 시작했다. 대중이 즐기게 된 궁정의 맛은 곧 ‘프랑스의 맛’이 됐다.


그렇다고 ‘요리의 장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명인 셰프’가 있다. ‘르 꼬르동 블루’에도 24명의 셰프 교수들이 있지만 그 중 ‘명인 셰프’는 딱 두 명뿐이다. 그들을 만났다.


명인 셰프는 옷부터 다른 요리사들과 달랐다. 요리사복 목칼라에 블루·화이트·레드 세 가지 색이 프랑스 삼색기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프랑스가 그들을 ‘국가적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프랑스 사람들도 목칼라에 삼색기를 두른 셰프들을 보면 마음으로 존경을 표한다고 한다.


나는 궁금했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이 꼽는 ‘최고의 요리’란 어떤 걸까. 그들이 엄지 손가락을 ‘척’ 세우는 최고의 맛이란 어떤 걸까-.


에릭 브리파는 ‘르 꼬르동 블루’에서도 톱으로 꼽히는 명인 셰프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정상급 만찬이 열릴 때는 그를 초청해 요리를 맡긴다고 했다. 그런데 브릭파 셰프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가 꼽은 최고의 맛, 그 핵심은 ‘단순함(simplicity)’이었다. “요리사는 음식의 원재료에 담겨 있는 ‘단순한 맛’을 살려내야 한다. 좋은 음식은 단순하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행복할 것 같나? 아니다. 삶에서 ‘단순함’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들. 그들이 행복한 사람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원재료의 단순한 맛, 그게 최고의 맛이다.”


예상 밖이었다. 화려한 재료에, 화려한 소스, 화려한 조리법을 거친 음식이 최고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반대로 ‘단순함’을 최고의 맛으로 쳤다. 나는 ‘르 꼬르동 블루’ 바깥으로 나왔다. 벤치에 앉았다. 에펠탑이 저만치 서 있었다. 내 삶에서도 ‘맛있는 순간’을 생각해 봤다. 그건 뷔페에 가서 다양하고 화려한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때가 아니었다. 거기서 먹고 나올 때는 오히려 ‘내가 오늘 뭘 먹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잘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물냉면 한 그릇’만 딱 놓고 단출하게 먹을 때가 더 좋았다. 음미의 순간이 더 길고, 집중력은 더 깊었다.


비단 음식만 그럴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의 눈 앞에는 매일매일 ‘나의 하루’라는 식탁이 차려진다. 거기에는 바람도 불고, 단풍도 들고, 비도 내리고, 노을도 진다. 온갖 메뉴가 차려진다. 우리는 그걸 제대로 음미하고 있을까. ‘나의 순간’이 모여서 ‘나의 인생’이 된다. 순간을 음미하지 못하면 인생을 음미할 수도 없다. 그럴 때마다 브리파 셰프의 한 마디가 힘이 되지 않을까. “좋은 음식은 단순하다. 좋은 음식은 단순하다.” 나는 그 말이 자꾸만 ‘삶’에 대입된다. “좋은 삶은 단순하다. 좋은 삶은 단순하다.”


글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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