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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이 곧 춤, 꿈을 꾸는 안무가가 나의 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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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8 면

김경빈 기자

보통 사람들은 대개 현대무용 하면 이사도라 덩컨을 기억한다. 매고 있던 빨간 스카프가 타고 있던 자동차 뒷바퀴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목이 졸려 죽은 비운의 댄서다. 올드 타이머들은 그녀를 영화 ‘이사도라 덩컨’의 주제음악으로 안다. 무릎을 탁 치며 그 멜로디 하고 탄식할 것이다. 폴 모리아 연주 버전이 단연 인기였다. 지금은 없어진 동아방송의 인기 심야 프로그램 ‘밤의 플랫폼’의 시그널로 익숙하다. 그 시절 젊음들의 서정과 감성을 사로잡았던 성우 김세원의 촉촉한 목소리는 또 어땠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이사도라 덩컨’을 들으면 그 세월로 돌아가 어느 간이역의 플랫폼에 서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사도라 덩컨을 빼면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현대무용가는 찾기 힘들다. 오랫동안 공연돼 온 고전발레와는 달리 현대무용은 난해함 그 자체다.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작가로 부르며 고집스레 현대무용의 르네상스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가 있다.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장 겸 예술감독이다.

안애순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다. 한국의 정체성과 동시대성이라는 화두를 춤으로 구현코자 노력해 왔다. 전통과 동양적 미학관을 토대로 현대적 전개를 모색하면서 다양한 실험과 과정을 거쳐 왔다. 1992년 한국 안무가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바뇰레 국제안무대회에 참가해 94년 ADAMI상(Prix d’ ADAMI)과 98년 Prix상을 받았다. 『옥스퍼드 무용사전』에 한국의 대표 무용가 중 한 사람으로 등재되는 등 해외에서도 역량과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마침 그녀가 단장을 맡고 있는 국립현대무용단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협업해 존 애덤스의 음악을 재해석하는 ‘오케코레오크래피’(7~9일)를 무대에 올렸다.

-현대무용 하면 대개 어렵다, 골치 아프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른바 딜레탕트(애호가)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당연하다. 고전이라는 게 뭔가. 이미 오랜 세월 인간의 검증을 거친 것이다. 그래서 클래식이라고 하지 않나. 그러나 현대무용은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지금도 진행 중이고. 말 그대로 지금 이 시대의 상황을 무용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당연히 따라잡기 힘들다. 골치까지 아프다. 생각을 강요한다. 게다가 이미지 작업이라 낯설다. 그래서 무용을 좀 안다는 사람들조차 어렵다고들 한다. 한마디로 정답도, 모범답안도 없다. 그냥 눈이 빠져라 집중해 봐야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설명을 들어도 감이 안 온다. 안애순이 주장하고 또 생각하는 현대무용은 무엇인가. “시대정신(zeitgeist)의 구현이다. 이 춤이 지금 이 순간 왜 무대에 서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안무가는 시대적인 고민을 함께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시대와 얘기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대무용은 그냥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실험정신까지 요구된다. 때때로 관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시대가 주는 목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시대의 외침을 담아내자는 게 나의 주장이다. 컨템퍼러리(contemporary)란 말도 그래서 나온다.”


-고전, 현대 가릴 것 없이 무용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고민이 많다. 슬프기도 하고. 1990년대는 무용의 시대였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등 유명 무용단이 앞다퉈 한국을 찾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공연이 계속됐다. 무용뿐만이 아니다. 오페라도 90년대에는 굉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삭막하다. 오케스트라만 그저 명맥을 유지할 뿐 무용도, 오페라도 숨만 쉬고 있다. 많은 순수예술 장르가 고사 직전이다. 뮤지컬만 호황이다. 순수예술이 시들어 가는 시대는 불행하다. 순수예술은 품위 있는 인간 사회를 지탱하고 우리 삶을 위무한다. 그나마 젊은 무용인들의 최근 활동에서 희망이 보인다.”


-김영란법 때문에 공연계가 야단이다. 무용계는 어떤가. “가장 직격탄을 맞는 게 무용계다. 정말 어렵게 됐다. 한숨만 푹푹 나온다.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암담하다. 자본 논리가 깊숙이 스며든 그림 시장은 별다른 영향이 없을 테고, 마니아층이 두꺼운 클래식 음악은 그래도 낫다.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저명 오케스트라 공연에는 여전히 스폰서가 붙고 이 땅의 선남선녀들이 말쑥이 차려입고 온다. 그러나 저변이 탄탄하지 못한 무용계는 다르다. 기업 협찬도 쉽지 않고. 각자도생 바람이 무용계에도 왔다고 봐야 한다. 이참에 거품을 빼자는 얘기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티켓 값이 싸져 관객들이 일시적으로 이득으로 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흥행이나 안정만을 추구하는 대중적인 작품이 주를 이룰 것이고 난해한 현대무용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듣는 나까지 우울하다. 화제를 돌려 보자. 왜 돈 안 되고 힘든 무용을 시작했나. “무용이 내 운명이었으면 좋겠는데 그와 같은 멋지고 거창한 계기는 없었다. 금란여중(현 이대부속중)을 다녔다. 미션스쿨인데 채플은 같은 재단의 이화여대 강당에서 했다. 그 당시 채플은 굉장히 세련되고 멋있었다. 시 낭독, 무용, 콘서트 등을 통해 채플이 진행됐다. 그때 무용에 필이 꽂힌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환경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자연스레 그런 환경에 길들여져 이화여대 무용과로 진학했다. 2학년 주 전공을 정할 때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발레를 하기에는 아담한(?) 내 체격이 받쳐 줄 것 같지 않고…. 그래서 고민 끝에 현대무용을 택했다. 현대무용은 어렵지만 장점도 있다. 무정형의 정형이다. 딱 정해 놓은 틀이 없기 때문에 창작할 수 있는 여지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그래서 현대무용가는 창작자, 작가에 가깝다. 스스로 주제를 선정해 그것들을 춤사위로 표현해 내는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60년대를 휩쓸었던 작가주의 영화와 같은 맥락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연출이 좋다. 낯익은 관습보다는 실험정신을 추구하기 때문에 철저한 비대중성을 태생적으로 수반한다. 현대무용이 어려운 이유다. 개성적인 표현과 창의적인 연출에 나 자신의 열정을 바칠 수 있어 좋다.”


-현대무용을 하면서 한국적인 정한, 전통적인 그 무엇에 관심이 많다. “무용가 이전에 한국인이 아닌가. 한국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 왔다. ‘불쌍’ ‘굿’ ‘씻김’ 등의 작품이 예가 된다. 특별히 굿에 관심이 많았다. 샤머니즘은 미신이 아니다. 서양에서도 존재해 왔다. 굿·무당 등이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지금의 시대가 안타깝다. 과거 굿은 공연 형식이었다. 해학성·즉흥성·우연성 등의 한국적인 철학이 녹아 있다. 장례의식도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 6월 ‘2015~2016 한·불 상호교류 행사’에 개막작으로 장례문화를 주제로 한 ‘이미아직’이 프랑스 국립샤요극장에 올려졌다. 현지 미디어의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무용가 최승희 이후 77년 만에 한국 안무가의 작품이 올려진 것도 의미가 있다. ‘이미아직’은 시간을 얘기하는 우리말 부사다.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고유명사로 오해하더라. 죽음을 삶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동양적 세계관을 담아낸 작품이다. 과거 장례의식에 등장하는 꼭두각시를 모티브로 삼았다. 쉽지 않았다. 우리 전통 제례의식이 유럽인들에게 먹히겠는가. 엄청 떨었지만 다행히 긍정적으로 평가해 줘 힘을 얻었다.”


-2013년 이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겸 단장으로 한국 현대무용을 책임지고 있다. “어깨가 무겁다. 책임감을 느낀다.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과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무용은 종합예술에 가깝다. 여러 장르가 만나 함께 만드는 작업이다. 작품의 질, 결과의 유무도 중요하지만 융합하는 과정과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태도도 중요하다. 결국 공연은 예술가들의 생각을 모으고 합치는 ‘예술가들의 만남’이란 게 내 생각이다. 실제로 예술가 중에는 가능성이 있지만 관객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예술가가 많다. 그런 가능성 있는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뭔가를 도출해 내고 또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작업이 될 땐 뿌듯하다.”


-몸소 무대에 서기에는 나이가 적지 않다.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사도라 덩컨도 만년에는 ‘살찐 돼지’ 등등의 악평에 시달렸다. 그녀가 우울증에 빠진 것도 대중의 비난 때문이었다. 무용수는 신체적인 제약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내 꿈은 삶에서 예술을 놓지 않고 작업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하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찾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신나고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안무가가 내 꿈이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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