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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패션에도 ‘유산’은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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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호 29면

패션업계를 취재하면서 귀에 못이 박이게 듣는 말이 있다. 다름 아닌 ‘헤리티지’, 유산이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은 자신의 제품이 얼마나 튼튼하고 멋진가로만 승부하지 않는다. 디자인 하나하나에 얼마나 풍부한 이야기가 숨어있는지를 내세운다. 유명인과 브랜드의 특별한 인연이나 디자이너의 남다른 유년시절처럼, ‘얘기될 만한’ 요소를 깨알같이 동원한다. 뻔한 것 같아도 효과는 대단하다. 그때부터 꽃무늬 드레스가 그냥 옷이 아니게 된다. ‘아, 저것은 원로 디자이너가 사랑했던 자택의 아름다운 정원을 옷으로 승화시킨 것이군!’ 갑자기 후광이 비치며 옷의 가치는 그때부터 달라보인다.


요즘은 대중적으로도 ‘학습’이 빈번히 나타난다. 몇 년 새 루이비통·샤넬·디올 등이 줄줄이 국내에서 열었던 전시를 떠올려보라. 차곡차곡 모아 온 브랜드의 아카이브에서 흔적을 찾아 씨줄날줄의 스토리로 엮어내는 노련함에 행사는 늘 흥행이 보장됐다. 그걸 보며 감탄 반, 질투 반에 의문이 들곤 했다. 왜 한국의 패션사를 보여주는 자리는 없는 걸까-.


지난달 22일 막을 내린 ‘Mode & Moments: 한국 패션 100년’전은 이런 의미에서 한번쯤 곱씹어 볼 만한 행사였다. 전시는 1900년대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국내 패션 아카이브와 한국의 전통 및 현대 예술을 접목시켰다. 옛 서울역에 열차가 다니기 시작한 1900년 경성의 모던 보이·모던 걸의 모습에서부터 패션 한류를 이끄는 21세기 한국 패션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국내 톱 패션 디자이너 60여 명의 의상 300여 점이 시대별로 전시됐다. 트로아조·한혜자·최경자처럼 이름만 들어봤던 원로들의 의상이 눈앞에 등장했다. 남녀의 이마 키스가 생각나는 앙드레김의 화려한 용무늬 드레스나 1970년대 미국 메이시스 백화점에 수출됐던 1세대 디자이너 노라노의 모던한 원피스도 눈길을 끌었다. 책으로만 보고 자료로만 배우던 한국 패션의 ‘실물’이었다. 나만 생경한 것은 아니었는지 함께 관람하던 의상학과 대학생들도 “처음 보는 옷들”이라며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 셔텨를 눌러댔다.


이런 볼거리 외에 생각거리도 남겼다.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고민해 온 ‘한국적 디자인의 세계화’가 이미 선배들의 옷 속에 녹아 있었던 것이다. 삼베와 붉은 자미사로 완성한 미인도 드레스(진태옥),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은 이브닝 드레스(박윤수)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단언컨대, 최경자 디자이너가 1970년에 만든 색동 소재 드레스는 지난해 샤넬이 재해석했던 한복 모티브 디자인에 견줄 수 없을 만큼 가장 ‘한국적’이었다.


감탄은 여기까지. 행사장을 나오며 다음 전시는 무엇일 수 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행사의 패션 부문을 감독한 서영희 스타일리스트와의 대화에서 그 어려움이 가늠됐다. “기념비적인 옷을 찾는 것부터가 힘들었어요. 디자이너들 개개인이 보관하고 있다 보니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이 안 됐죠. 개별적으로 연락해 ‘선생님, 그때 그 옷 지금 갖고 계시죠?’하는 식으로 챙기는 수밖에 없었어요.” 재단 패턴이나 스케치 기록까지 기대하는 건 당연히 무리였을 터다(세계적 디자이너들이라면 이런 것조차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하여 이번 전시를 계기로 패션 박물관 설립이 진지하게 논의됐으면 싶다. 세계적인 패션 도시인 파리·밀라노에도 이미 다 있다는 걸 근거로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예산과 운영 주체와 방식 등 각종 난제가 많으리라는 것도 짐작된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이유, 과거의 우리 패션을 되돌아 볼 아카이브는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패션 한류를 외치기에 앞서, 후대 디자이너들이 과거에서 새로움을 얻어내는 창발법이 그곳에 있을 터다. 가려져 있을 뿐, 우리 패션에도 소중한 ‘유산’은 있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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