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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도 명절에 고향 가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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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29면

오랜만에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서울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드는 이 길을 나는 참 좋아한다. 그렇다고 자주 가진 않지만, 모처럼 근처에서 지인과 약속이 있었다. 미리 가서 한 바퀴를 돌고 약속장소로 갔다. 그날 우리가 함께 간 곳은 이중섭 화백의 전시회였다. 예전에도 본 적이 있고, 제주에서도 둘러본 적이 있던 그림이지만, 이렇게 그분 생애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건 처음인 것 같다.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은 편지와 그림들은 입가에 미소를 머물게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지켜내지 못한 화가의 절망, 그 아픔이 절절히 전해져 발길을 잡았다. 창틀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는 쓸쓸한 마지막 그림 앞에선 나도 모르게 먹먹해져 눈물이 차올랐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란 게 과연 저런 것일까, 출가자로서 그간 묻어두었던 아련한 기억들이 올라와 촉촉하게 가슴을 채웠다.


이제 곧 한가위다. 명절 때만 되면 누구나 한번쯤은 고향을 떠올릴 것이다. 나도 그렇다. 문득 몇 해 전 “스님들도 명절에 고향 가나요?”라고 물었던 한 친구가 생각난다. 처음엔 이 질문이 얼마나 우습던지 한참 웃었다. 그러나 이내 세상 사람들은 궁금할 수 있겠구나 싶어 답해주었다. “아니요. 출가한 스님들은 명절이라고 해서 부모님 계신 고향에 가지 않습니다. 대신에 은사 스님이 계신 본사(本寺)에 가지요. 육신의 고향이 아닌 정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절에서는 명절에 뭐해요?” “비슷해요. 모두 모여서 송편도 빚고 달맞이도 하고 차례도 지내죠. 제사 못 지내는 분들을 대신해서 제사도 지내드리고요. 우리는 명절을 그렇게 보낸답니다.”


스님 중에는 출가 이후 한 번도 고향에 가지 않았음을 자랑으로 여기는 스님이 아직도 많다. 돌아가시기 전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서야 부모님을 찾아뵈었다던 어느 스님의 이야기가 절집에는 여전히 미담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자랑스러워할 것까진 없다. 인연을 끊고 수행에 몰두했다는 출가자의 의지보다, 자식을 걱정하며 일생을 보내고도 편히 눈감지 못했을 부모님의 심경이 더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불가에는 ‘한 자식이 출가하면 구족이 천상에 태어난다’는 말이 전해진다. 물론 출가수행을 잘할 경우를 전제로 하는 얘기다. ‘내 가족도 천상에 있을까’ 생각하면 나도 확실한 답을 못하겠다. 출가 후에도 마음을 닦지 못한 시간이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맑고 명료한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으로나마 ‘장군죽비’를 드는 것이리라.


우리에게는 모두 뿌리가 있다. 이번 명절에는 각자 자신의 뿌리를 향해갔으면 좋겠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 하지 않던가. 잎도 때가 되면 뿌리를 향한다는데, 육신이든 정신이든 추석엔 그 고향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분들이 없기를 손 모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원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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