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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가 존중돼야 하는 까닭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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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호 2 면

표현의 자유는 인권이다. 지난 3월 인공지능(AI)에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발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한 채팅봇 테이(Tay)가 “페미니스트는 지옥에서 불태워야 한다”는 등 부적절한 표현을 하자 MS가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


올 것이 다가오고 있다. 언젠가는 인간과 완벽하게 똑같은 로봇이 탄생할 것이다. 측은지심이 있고 그렇게 되면 로봇에도 세례를 줘야 하는지를 두고 신학계가 뜨거울 것이다. “영혼이 없는 로봇에 세례가 무슨 소용인가”라는 주장에 대해 ‘극단적인’ 진보 신학자들은 “인간도 전통적인 의미의 영혼이 없는 것은 로봇과 마찬가지다. 영혼은 뇌의 작용이다”고 응수할 것이다. 또 인간과 동등한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지 같은 담론이 국내외 사회를 들끓게 할 것이다.


그런 미래형 고민 말고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많다.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시대착오적인 갈등이 분출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1년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풍자 신문 샤를리 에브도에 대해 테러가 자행된 것이다. 아프리카 니제르에서는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이 테러 이후에도 반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간접 보복으로 수십 개의 교회를 불태웠다. 최근 미국 대학가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도처에서 표현의 자유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나는 당신의 말에 반대하지만,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 이 말은 프랑스 계몽 사상가 볼테르(1694~1778)가 직접 한 말은 아니지만 그의 사상을 요약하는 말이다. 볼테르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어쩌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미국 언어학자·철학자 노엄 촘스키(87)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멸시하는 사람들마저도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믿음이 아예 없는 것이다.” 두 말은 결국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프랑스대혁명(1789~1794) 이후 222년이 흘렀지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류의 합의와 실천은 아직도 견고하지 않다.


대체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신의 생각, 의견, 주장 따위를 아무런 억압 없이 외부에 나타낼 수 있는 자유. 언론·출판·통신 따위의 자유가 이에 해당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18조·21조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표현의 자유에는 국내를 넘어 국제적인 차원이 있다. 표현의 자유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세계인권선언(1948) 제19조에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가질 자유를 포함하며, 또한 모든 수단을 통하여, 국경을 넘거나 넘지 않거나에 관계없이,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받고 전할 자유를 포함한다”고 돼 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1966)의 제19조에는 “모든 사람은 간섭받지 아니하고 의견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1항). 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2항)고 돼 있다.


표현의 자유에는 또한 경제적 측면이 있다. 창의성은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다. 표현의 자유 없이 창의성이 만개할 수 없다. 표현을 억압하면 생각이 죽는다. ‘독창적으로 생각하기(thinking out of the box)’ 위해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어떤 억압도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자유론』(1859)에서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나의 자유는 침해될 수 없다”로 요약되는 위해원칙(Harm principle)을 자유 제한의 일반 원칙으로 제시했다. 위에 언급한 채팅봇 테이의 운영 중단에도 위해원칙이 적용됐다고 볼 수 있다.


개막을 6개월여 남겨놓고 부산영화제가 삐걱대고 있다. 2년 전 세월호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한 게 논란의 불씨가 됐다. 영화인들은 공석이 된 집행위원장을 영화인 총회에서 선출하자고 주장해 부산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갈등의 밑바탕엔 표현의 자유가 제한 받을 수 있다는 영화인들의 우려가 깔려 있다. 이를 이유로 부산영화제 보이콧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부산영화제 개최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세계적인 행사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으로 열리지 못하거나 반쪽 행사로 전락한다면 세계인들은 한국이 인권 후진국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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