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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s&Analysis] 베트남, 대미 수출 32% 증가 낙관, 경쟁국 인니는 대응에 부심

중앙선데이

입력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아세안 의류·섬유 산업을 대표하는 양대 국가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5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 타결을 계기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베트남 의류·섬유 산업이 TPP의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트남이 아세안 의류·섬유 산업 주도권 경쟁에서 이니셔티브를 쥐게 됐단 말인가? TPP를 리드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이 베트남 의류·섬유 제품의 최대 수출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답은 ‘예스(Yes)’다.


베트남, TPP 관세 인하 효과 기대TPP에 불참한 인도네시아와 달리 ‘메이드 인 베트남’ 제품은 TPP 관세 혜택을 누리게 돼 비교 우위가 높아졌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TPP 회원국에서 미국의 의류 및 신발 수입관세(현재 17~32%)가 대폭 인하됨에 따라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32%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트남 경제정치연구소(VERP)는 TPP 효과로 베트남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1.3%포인트 높아지고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입은 최대 27%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서 잠시 의류·섬유 분야의 국가별 대미 수출액을 살펴보자. 지난해 1~8월 누적 기준으로 중국의 미국향 수출액이 285억 달러로 압도적 1위다. 베트남은 75억 달러로 2위, 인도네시아가 35억 달러로 5위를 기록했다. 베트남의 수출 규모는 중국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두 배 이상이다. TPP 발효로 중국과 베트남의 순위가 뒤바뀌지는 않더라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전망은 충분히 가능하다.그러나 베트남이 TPP 협정상 무관세 혜택을 받으려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원사(Yarn)에서 의류 완제품에 이르는 모든 생산공정이 TPP 회원국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른바 얀 포워드(Yarn Forward) 규정에 따라 단일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한국·대만 등에서 상당량의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베트남으로서는 중요한 이슈다.만일 베트남 내 수직계열화된 의류·섬유 클러스터가 형성된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TPP 관세 인하 효과를 등에 업고 원자재 업체와 최종 완제품 업체 간 윈윈(win-win)이 가능해진다. 중국과 인도, 한국과 대만의 원자재 공급업체들이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거나 베트남에서 새로운 설비투자를 모색하는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7월부터 베트남 롱안성에서 유니클로의 태그를 찍어내고 있는 세계 최대 의류 라벨 태그업체 에버리 데니슨 공장의 스미겔스키 부사장의 말을 인용해 “베트남에 베팅하는 기업은 계속 늘어날 것이며, 중국의 성장 속도보다 빠른 변화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고부가가치화로 차별화 모색그렇다면 인도네시아의 사정은 어떠한가. TPP에 참여한 아세안 국가는 베트남 외에 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 등 총 4개국이다. TPP에 불참한 인도네시아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줄 보상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RCEP는 아세안 10개국과 중국·한국·일본·인도·호주·뉴질랜드 등 16개국 간 자유무역협정인데, 아직 중국과 일본 간 입장 차이가 정리되지 않아 타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RCEP가 지금 당장 타결된다고 해도 베트남 역시 이 협정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인도네시아가 누릴 차별적 우위는 없다.따라서 TPP 효과로 비교 우위를 차지한 베트남이 인도네시아 의류·섬유 산업에 미칠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재 인도네시아 의류·섬유 산업은 GDP의 2~3%, 총 수출액의 7% 수준을 차지한다.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비중이다. 인도네시아 의류섬유산업의 악재는 TPP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급상승하고 있는 인건비와 전기요금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2000여 한국 기업 중 절반 가까이가 섬유·봉제·신발 분야 업체인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경영 애로사항은 연 11~44%에 이르는 최저 임금 상승과 5~18%에 이르는 전력요금 인상, 그리고 낙후된 인프라다. 현지 사업 여건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이야기다.그렇다면 인도네시아의 선택은 무엇일까? TPP 참여를 둘러싼 인도네시아 정부의 속내는 다소 복잡하다. 의류·섬유 산업의 피해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기타 다른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설사 TPP 가입을 추진한다고 해도 이미 타이밍을 놓쳤고, TPP 가입 요건과 절차도 까다롭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대책은 섬유산업의 고부가가치화로 베트남과 차별화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한국·독일 등 선진 섬유기술을 보유한 기업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노동집약 산업에 대한 조세특별조치 연장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베트남으로 공장 이전이 유리, 리스크도 고려해야향후 동남아 의류·섬유 산업은 상공정(염색-가공-방적-제직) 부문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크게 두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첫째, TPP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면서 대미 수출을 늘리려면 베트남에서 상하공정을 연결하는 통합화 체제가 더 유용하다. 이 때문에 글로벌 메이커들의 베트남 현지 투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둘째, 중국 내 인건비 상승과 인력난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인도네시아도 중국과 비슷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그만큼 베트남으로의 공장 이전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의류·섬유 업계가 베트남으로 몰려오는 현상이 급격히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업계들이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베트남 내 한국계 기업들 간 과다경쟁이 가져올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오히려 저가 제품과 차별화하면서 인도네시아의 TPP 참여 및 섬유산업 육성정책을 유도해내는 것이 현실적일지 모른다.TPP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베트남에서는 대도시 인근 파인애플 또는 망고 재배지역이 의류·섬유 산업단지로 탈바꿈하는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 현재 베트남 내 한국계 의류·섬유업체는 약 600개로 추정되지만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효성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효성은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약 10억 달러를 투자해 베트남 동나이성에 스판덱스와 폴리에스테르, 타이어코드 공장을 건설했고 2014년 당기순이익이 1000억원을 넘어섰다. 6억 달러 규모의 추가 설비 신증설 투자도 추진 중이다. 한솔도 2억 달러, 일신방적도 1억8000만 달러 규모의 원사·직물 공장을 짓는 데 투자한다.TPP 시대의 베트남 경제를 마냥 장밋빛으로 볼 것은 아니다. TPP는 양날의 검일 수 있다. 베트남이 TPP 관세 인하 효과에 기대다 보면 산업 고도화와 경쟁력 개선에 소홀해질 수 있다. 이미 80%에 달하는 GDP 대비 수출 비중이 TPP 효과로 더 늘어날 경우 수출시장의 경기 변동, 즉 대외 경제의 변동성에 더 취약해지는 경제 구조를 낳을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대미 수출 감소와 기존 의류·섬유 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수도 있지만 산업의 고부가가치화 정책이 성공한다면 새로운 도약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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