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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강정호 잘 나갈수록 한국 박병호가 더 즐겁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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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 23면

메이저리그 전문가인 송재우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강정호(28·피츠버그)의 성공을 보고 가장 좋아할 선수는 누구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박병호(29·넥센)라고 했다. 송 위원은 “박병호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관심이 지난해보다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올 시즌이 끝나면 박병호는 해외진출 자격을 얻는다. 지난해 강정호의 미국 진출을 지지했던 넥센은 올 겨울엔 박병호의 빅리그 입성을 적극 도울 계획이다. 1년 전만 해도 메이저리그는 한국 타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강정호 활약 덕분에 박병호에 대한 스카우팅 리포트가 새로 작성되고 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최소 10개 팀 이상이 박병호 영입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정호가 5번이면 4번은 누구냐”
피츠버그 트리뷴의 롭 비어템펠 기자는 이달 초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클린트 허들(58) 피츠버그 감독의 흥미로운 코멘트를 전했다. “강정호가 한국에서 5번을 쳤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더 잘 치는) 4번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강정호는 메이저리그 데뷔 3개월 만에 피츠버그의 중심타자로 성장했다. 4번타자로 15경기를 뛰었고, 지난달부터는 5번타순에 고정되고 있다. 허들 감독이 강정호보다 뛰어난 타자가 어떤지 궁금해 할 만 하다. 지난해 4번 박병호는 홈런 1위(52개), 타점 1위(124개)에 올랐고, 3할 타율(0.303)도 돌파했다. 5번 강정호는 타율 4위(0.356), 홈런 2위(40개), 타점 3위(117개)에 올랐다.
강정호는 한국 프로야구 출신 타자로는 처음으로 빅리그 진출에 도전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비공개 입찰에서 피츠버그가 낚아챘다. 넥센에 포스팅비용(이적료) 500만 달러(약 59억원)를 줬고, 지난 1월 강정호와 4년 총액 1100만 달러(약 130억원)에 계약했다. 부자 구단이 아닌 피츠버그로서는 대담한 투자를 한 셈이다. 게다가 강정호는 미국 무대에서 검증받지 않은 선수였다. 이 때문에 “다른 팀이 강정호를 영입하는 걸 막기 위해 피츠버그가 위장입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당시 닐 헌팅턴(46) 피츠버그 단장은 “강정호는 파워 있는 타자다. 올 시즌은 백업 내야수로 시작하겠지만 언젠가는 주전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4월만 해도 강정호의 역할은 3루수와 유격수의 백업이었다. 유격수 조디 머서와 3루수 조시 해리슨이 부진에 빠지자 기회를 잡았다. 5월부터 진가가 드러났다.
먼저 안정된 수비를 선보였다. 과거 일본 내야수들은 빠른 타구 처리에 약했지만 강정호는 달랐다. 부드러운 포구와 강한 송구 능력을 자랑했다. 그 다음은 타격 정확성이었다. 한국에서보다 스윙폭을 줄였다. 낯설고 강한 투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홈런보다 안타를 치는 게 우선이었다. 영리한 선택이었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대처였다.
주전을 굳히자 스윙에 자신감이 붙었다. 지난달 25경기에서 타율 0.379, 홈런 3개, 타점 9개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7월의 신인상을 받았다. 규정타석에 진입한 강정호는 13일(한국시간) 현재 내셔널리그 타율 17위(0.296), 출루율 10위(0.371), 장타율 22위(0.459)에 올라 있다. 홈런은 9개(58위), 타점은 40개(58위)다. 내셔널리그 15개 팀 어디를 가도 중심타순을 맡을 수 있는 성적이다.
메이저리그는 선수 가치를 평가하는 데이터로 WAR(Wins Above Replacement·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을 활용한다. ESPN에 따르면 강정호의 WAR은 3.7(내셔널리그 15위)이다. 평균의 선수보다 피츠버그에 3.7승을 더 안겼다는 의미다. 폭스스포츠는 “헌팅턴 단장이 가장 잘한 건 강정호 영입”이라고 평가했다.

MLB 상황 박병호에게 유리해져
김경문(57) NC 감독은 “11~12일 넥센전에서 박병호에게 홈런 3개를 맞았다. 우리 투수들이 안 맞으려고 애쓰는데도 소용없더라. 약점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박병호는 13일 현재 홈런 1위(41개), 타점 1위(108개), 타율 3위(0.350)에 올라 있다. 이승엽(39·삼성)·장종훈(47·은퇴)도 하지 못했던 4년 연속 홈런·타점왕을 향하고 있다. 지난해의 개인 최다 홈런(52개)은 물론 한 시즌 역대 최다 홈런(56개·2003년 이승엽)을 경신할 가능성이 있다.
해외 이적 때 가치평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잠재력, 다른 하나는 시장 상황이다. 12년 전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이승엽은 56홈런을 치고도 진출하지 못했다. 당시 한국야구는 메이저리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마쓰이 히데키(41) 등 일본의 50홈런 타자도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국 스카우터들은 이승엽의 기록을 신뢰하지 않았다. 수요와 공급도 이승엽에게 불리했다. 당시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비밀리에 금지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1990년대 말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60홈런 시대를 열었고, 배리 본즈는 2001년 73홈런으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 홈런 인플레이션 시대에 이승엽을 비싸게 살 이유가 없었다.
이후 메이저리그는 금지약물과 전면전을 펼쳤다. 본즈를 비롯해 도핑 스캔들에 연루된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떠났고, 투고타저(投高打低) 현상이 심해졌다. 13일 현재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 1위는 34개를 때린 넬슨 크루즈(시애틀)다. 30개 구단에서 30홈런을 넘긴 타자는 7명, 3할대 타율은 23명뿐이다. 박병호가 빅리그에서 타율 0.280, 홈런 20개 이상을 때린다는 계산이 나오면 여러 팀이 달려들 것이다.
물론 강정호의 성공이 박병호의 성공까지 보장하진 않는다. 강정호는 하체 움직임이 지나치게 크고, 스윙 스피드가 빠르지 않다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주전으로 뛴다 해도 타율은 0.260, 홈런은 20개 미만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타율은 더 높고, 홈런은 덜 나온다.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강 스윙폭을 줄였기 때문이다.
박병호는 이동발을 거의 고정한 채 타격하는 빅리그 스타일의 스윙을 한다. 그러나 시속 150㎞ 이상의 강속구를 쉽게 쳐내진 못한다. 강정호처럼 영리하게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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