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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 않은 원화값 하락…금리인하 방해에 수출 지원효과도 시원찮아

중앙일보

입력

원화 값 하락이 본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은 '달러 강세, 원화 약세' 흐름을 이끄는 쌍끌이 변수다. 원화 값이 맥을 못 추는 이유다.

2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3.9원 하락한 1203.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원화가치가 1200원대로 내려온 건 3월10일 이후 9개월여 만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날인 8일까지만 해도 달러 당 1158.5원이었던 원화가치는 이후 11거래일 중 단 하루를 제외하고 계속 하락했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에 대한 기대감과 미국 금리인상(15일) 등의 영향으로 달러화 강세, 원화값 약세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며 “일시적으로 1210~1220원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화값의 하락은 ‘양날의 검’이다. 원론적으로 한국 상품의 달러화 표시 가격을 낮춰 가격경쟁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수출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이라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외국인은 달러 등 외화를 원화로 바꾼 뒤 한국 시장에 투자하기 때문에 원화값이 떨어지면 환차손을 입는다. 이들 입장에서는 원화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돈을 빼는 것이 환차손을 줄이는 길이다.

한은이 정부 등의 금리인하 요청에 대해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선뜻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순투자액(매수액-매도액 및 만기상환액)은 -9조1850억원에 이른다. 미국 금리인상, 원화값 하락이 겹친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낮추는 건 대규모 자금 이탈의 가속화로 이어진다.

재계 일각에서는 원화값 하락이 수출에도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최대 수출 경쟁국인 일본의 엔화값 하락폭이 더 커 상대적인 해외 가격경쟁력은 오히려 악화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달러에 대한 엔화가치는 최근 고점인 11월3일의 103.08엔에서 22일 117.59엔으로, 원화가치(같은 기간 1139.6→1199.1원)보다 더 가파르게 하락했다. 이 때문에 같은 기간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원·엔 재정환율)는 100엔당 1107.7원에서 1023.49원으로 급등했다. 지난 15일 장중에는 한 때 990원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때문에 한은은 금리인하 카드를 사실상 접은 상태다. 이미 12월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하면서 ‘금융시장 안정’에 방점을 찍었던 이주열 한은 총재는 22일에도 국회에서 “당분간 금융안정에 좀 더 유의해야 한다. 1.25%라는 현재의 기준금리도 경기회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완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은이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금리를 올리면 경기는 더 꺼질 수 있다. 13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도 부담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Fed가 예고대로 내년에 금리를 3번 이상 올리면 한은이 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지고, 그렇다고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아 한은은 사면초가에 몰린 셈"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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