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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 4년간 80번 고쳐 써, 나보고 몹쓸 병 걸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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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는 시를 쓰면 고생을 많이 해. 재주가 없나봐. 일종의 결벽증 환자 같애. 병이야 병.”

서정춘 6년 만에 다섯번째 시집
“단박에 모든 걸 보여주는 시는
감동이 금세 퇴색하고 증발해”
25행짜리 작품, 5행으로 압축도
시인·예술가들이 인정하는 시인
고은 “매력 없는데 순금 같은 놈”

은밀한 귀띔인 듯 답답함의 토로인 듯 시인 서정춘(75)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지난 8일, 6년 만에 생애 다섯 번째 시집 『이슬에 사무치다』(글상걸상·사진)를 받아든 인터뷰 자리에서다.

요컨대 고쳐 쓰고 또 고쳐 쓴다는 것, 마음에 찰 때까지 시 한 편을 수십 번이고 고쳐 써야 직성이 풀린다는 얘기였다. 가령 그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죽편(竹篇) 1-여행’을 4년에 걸쳐 80번 가량 고쳐 썼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전문).

시인들이 사랑하는 시로 꼽힌 시, 2003년 소리꾼 장사익이 홀딱 반해 노랫말 삼아 ‘여행’이라는 노래로 작곡하고는 불쑥 전화 걸어 “선생님, 죽을 죄를 졌습니다”라고 자복했다는 시다.

대중적으로 덜 알려졌을 뿐 서정춘은 예술가들이 인정하는 예술가다. 시인 고은은 그를 두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서도 진국인 놈, 아무 매력도 없는데 순금 같은 놈”이라고 평한 바 있다. 시인이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적 불운이 필요한데, 서정춘은 무명이라는 불운의 조건을 갖췄다는 뜻이다.

맑고 단단한 구슬 같은 서정시를 쓰는 서정춘 시인. 6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냈다. ‘균열’이라는 시에서 스스로를 표현한 것처럼 ‘모질게도 아름다운’ 주름으로 덮인 얼굴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맑고 단단한 구슬 같은 서정시를 쓰는 서정춘 시인. 6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냈다. ‘균열’이라는 시에서 스스로를 표현한 것처럼 ‘모질게도 아름다운’ 주름으로 덮인 얼굴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정춘을 인정하는 리스트에는 시인 신경림과 이시영·김사인, 사진가 육명심도 들어 있다. 쟁쟁한 예술가들 사진을 도맡아 찍어온 도도한 육명심(83)은 서정춘의 또 다른 가편 ‘30년 전’의 한 대목,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에 울컥해 사진 찍기 싫다는 서정춘을 끝끝내 따라다녔다고 한다.

왜들 한사코 서정춘, 서정춘 하는 걸까. 서정춘답게 달랑 29편만 실은 새 시집에서도 그 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에게는 여러 십 년 전전날의/ 저 빨치산 아낙 같은 누님이 있어/ 전설처럼 멀고 먼 산골 마을로/ 달비 끊어 오겠다며 길 떠난 지 오래/ 여태도 소식 없어 낮달처럼 희미해진/ 누님의 이름은 은희였다/ (울다가 웃음 반 울음 그친 얼굴의…)’.

시집 첫 머리에 실린 ‘은희’ 전문이다. 여인네들이 치렁치렁한 머리(달비)라도 잘라 팔아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50∼60년대, 눈물을 머금었을 그이들의 백지 같은 얼굴, 그렇게 집 나가 돌아오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아득한 사연이 시에는 서려 있다.

‘흘러와, 이따금 사기그릇 놓쳐 버린 뒷설거지 소리를 사금파리 귀때기가 솔도록 듣느니 먼 어머니의 손 시린 안부가 궁금하다네’.

‘여울목에서’는 씹을수록 맛이 난다. 여울물 소리는 시인에게 그릇을 놓쳐 가며 하는 설거지 소리로 들린다. 그런 청각적 연상은 시인을 두 살 때 여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끈다. 짧지만 품이 넓은 시, 많은 얘기를 하는 시다.

이런 시는 단순히 오래 고쳐써 얻어지는 게 아니다. 무지막지할 정도로 시를 줄이고 줄인 결과다. 다섯 행짜리 ‘죽편 1’은 처음에는 25행이었단다. 다음은 시인의 압축 철학.

“정원사가 전지를 잘못하면 거목이 죽는다. 그걸 알면서도 정원사는 계속 잘라내야 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열매와 꽃이 많이 필 수 있는 그런 부분을 살리면서, 그런 걸 다 생각해 가면서 시를 자르려다 보니 참 환장하지, 내가. 우리 마누라가 당신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한다.”

과정이 고통스러운 만큼 탈고의 해방감은 클 수밖에 없다. 시인은 “그 즐거운 고통, 묘한 맛 때문에 시를 쓴다”고 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시를 쓰다 보니 1968년에 등단한 시인이 지금까지 발표한 시는 200편 남짓이다. 1년에 네 편꼴. 무수히 버렸을 것이다.

시는 뭔가. 정의를 내린다면.
“아무 것도 아닌 아무 것이다.”
시인은.
“글쎄, 힘 없는 혁명가?”

시인은 “시 아닌 것 같은 시가 생명력이 있다”고 했다. “단박에 모든 걸 보여주는 시는 감동이 금세 퇴색하고 증발한다”는 얘기다. 요즘 시집이 너무 많이 나오고 시인도 많은데다 시의 길이도 길어져 문제라고도 했다. 그래서 시인은 함부로 시를 발표하지 못하고, 자꾸 고치다 보니 시가 짧아지는 거였다.

시인은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이 동갑내기 고향 친구다. 어려서 공부 못하는 열등감에 설움도 컸다. 그러나 고단한 삶은 신명으로 이어져 시인은 흥이 많다. 장사익이 작곡한 ‘여행’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따다다다 따다다다…” 하는 전주를 대뜸 읊조리기 시작했다. 두어 소절 불렀을까. 거짓말처럼 진짜 ‘여행’ 노랫가락이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전화왔을 때 컬러링 노래가 ‘여행’이었다. 순간 시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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