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도하는 심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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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역사가 인물을 만드는가, 아니면 인물이 역사를 만드는가. 이런 주제를 놓고 한때 토론을 많이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초점이 다소 변화되어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인간에게 있는가, 아니면 구조라고 하는,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하기 힘든 객관적 힘에 있는가를 즐겨 토론한다.
만일 모든 것이 구조적으로 결정된다고 한다면 인간은 그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데는 무력한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은 이미 결정된 구조의 힘을 단순히 수행하거나 제한된 운신의 폭으로 이에 대응하려 하지만 결국 압도당하는 것으로 가정된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의 역할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다시 말해 인간의 지혜와 노력 여하에 따라 역사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뚫는 실천적 역량이 발휘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비관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변수는 시간이다. 시간을 유실하면 상황은 악화되기 쉽고 어느 순간을 넘고 나면 인간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더라도 역사는 돌이킬 수 없게 파국으로 간다는 의미에서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 그러나 만일 인간의 실천적 역량이 적시에 발휘된다면『난세에 인물이 난다』는 옛말이 실증될 수도 있다. 즉 난세가 새로운 인물을 요구하고, 또 그런 인물이 실제로 나옴으로써 난세가 극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난세중의 난세다. 국민의 여망과 정치현실, 특히 집권층 사이의 간격이 이처럼 심하게 벌어진 적이 없다. 진정으로 우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다 이 간격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데 위기의 심각성이 있다.
예컨데 격돌의 6월10일은 많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 채 이제 지나갔지만 이날의 단절된 양면성은 이 시대의 수치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한쪽에서는 철통같은 경비 속에 화려한 전당대회가 계획대로 진행되는가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수만명의 경찰력과 최루탄으로 시민의 집회·결사가 원천봉쇄당하는 이 악몽같은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시민이 이 집회에 어느 정도 적극 합류했는가와는 별도로 이들의 관심이 잠실체육관보다 단연 시청앞 성공회에로 쏠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어렵고 험난한 시기에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집권여당의 노태우대표위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을 착찹하기만 하다. TV매체가 뭐라고 하건 국민은 민정당의 잔치에 선뜻 하객으로 동참할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암울한 정치현실에, 특히 집권여당의 정치 스타일에 강한 불안과 회의를 느끼고 있다. 이것은 노후보에게는 심각한 부담임에 틀림없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지도자라면 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마디 더 쓰자면 노후보가 위에서 본 난세의 인물이 과연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직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다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고 일말의 기대를 거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뜻 있는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미래에의 밝은 전망을 거의 포기하고 오히려 비극을 예견하거나 응시하는 것이 추세다. 역사는 같은 형태로 반복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유신체제와 같은 것이 재현되거나 그 뒤의 파국을 걱정하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이것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불신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난세를 다스릴 인물이 아니고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어떤 구조적인 힘이 4·13선언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어쩌면『국민이 4·13선언을 받아들인다면 그틀 안에서 개혁을 과감히 추진할텐데…』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관해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이미 무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우리는 개혁을 향한 국민의 열망은 계속 상승하는데도 이에 상응한 실질적인 개혁은 일어나지 않은 채, 설상가상으로 권위주의 체제에 그 동안 내화된 비리와 모순은 언제 어떤 형태로 터질지 모를 위험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앞날에 파고와 긴장이 높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 누구를 만나보아도 그들이 진정으로 하는 말에는 탄식과 분노가 얽혀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또 적나라한 힘의 사용에 대한 저항의 체질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힘의 사용은 비록 그 순간에는 효력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이 이완되는 순간 예측 불가능한 사태로 번질 위험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또 국민을 너무 얕잡아 보다가 정말로 최악의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여론은 오늘날 여야 지도자의 실질대화와 정치다운 정치의 회복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 핵심에 4·13문제가 있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현재의 여건에서 이 문제의 해결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것을 덮어두고 가는 노후보의 앞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난세의 위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치「카를로스」왕과「곤살레스」수상(사회노동당 당수)이 양두마차를 이루어 스페인의 민주화를 국민적 지지아래 신속히 추진했듯이, 우리에게도 이런 발전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희망의 정치가 소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주시하면서「마지막 기도하는 심정으로」…. <한상진 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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