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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 끝났고, 관광객 돌아오지만…주민들은 지진 트라우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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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일 경북 경주시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원전을 바라보고 있다. 9·12 지진으로 가동을 멈췄던 월성원전은 지난 6일 재가동에 들어갔다. [프리랜서 공정식]

19일 경북 경주시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원전을 바라보고 있다. 9·12 지진으로 가동을 멈췄던 월성원전은 지난 6일 재가동에 들어갔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14일 경북 경주시 황남동 한옥마을. 9월 12일 규모 5.8 강진으로 한옥 3500여 채 중 1052채가 기와 파손 등 피해를 입은 곳이다. 지진발생 100일(12월 20일)을 앞두고 찾은 한옥마을은 대체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강진 직후 기왓장이 깨지고 날아가 비가 새던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정돈돼 있었다. 다만 지붕은 전통 기와 대신 함석기와로 보수돼 있었다.

9·12 지진 100일, 경주를 가다
예전에는 작은 지진에 놀랐지만
일상화된 3.3 여진에 대피 안 해
영화 ‘판도라’ 속 노후 원전 폭발이
월성원전서 실제로 일어날까 걱정
관광객 회복세…예년 수준에 근접

지진 공포에 안절부절 못하던 주민들은 차츰 안정을 찾고 있었다. 최근 잇따르는 여진에도 공포를 느끼지 않을 만큼 일상으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황남동 주민자치센터 앞에서 만난 최귀분(69·경주시 황남동)씨는 “이틀 전 규모 3.3 지진이 와서 조금 흔들리고 (재난)문자도 왔지만 대피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경주에서는 9·12 지진 이후 총 553회(20일 오후 9시 기준)의 여진이 일어났다. 하루 평균 5회 이상 여진이 발생한 셈이다. 같은 날 오후 찾은 진앙인 경주시 내남면 덕천3리. 지진 피해를 몸소 겪은 이 곳 역시 주민 대부분이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조영술(45) 이장은 “예전에는 작은 지진만 와도 깜짝깜짝 놀랐지만 이젠 아니다. 여진이 있어도 그리 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모차를 밀고 가던 70대 할머니는 “9월 만큼 큰 지진은 이제 없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4시쯤 찾은 경주시 황성동. 진앙과 13㎞ 떨어진 경주 시내다. 하지만 한옥마을이나 진앙 인근 주민들과 달리 이곳 주민들은 지진 이야기를 꺼내자 고개부터 저었다. 기억조차 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다. 편의점 앞에서 만난 주부 정모(38)씨는 “규모 5.8 지진이 왔을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 가슴이 벌렁 거리고 지금도 여진을 느끼면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주부는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지진이 나면 운동장으로 대피해야 한다고 매일 같이 신신당부한다”고 전했다.

경주 도심을 돌아보던 중인 오후 5시20분. 경주에 3.3의 여진이 발생했다. 여진 직후 황성동의 한 아파트 경로당에서 만난 김모(76) 할머니는 “누워있다가 아파트가 흔들려서 집 밖으로 서둘러 나왔다. 지난 9월 강진 때 물컵이 떨어져 깨지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안절부절 못했다. 이날 만난 경주 시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원자력발전소였다. 지진에 따른 폭발 가능성을 걱정했다. 직장인 김재유(31·경주시 황성동)씨는 “경주 월성원전과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인근에 활성단층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앞으로 재차 강진이 올까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판도라’를 언급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노후 원전이 폭발하는 내용을 다룬 재난영화다. 직장인 이현준(33·경주시 동천동)씨는 “영화에서 규모 6.1의 강진으로 노후 원전이 폭발하는 장면을 보면서 최근 재가동한 월성원전 1호기가 갑자기 떠올랐다”고 불안해했다.

여진의 일상화, 지진 공포가 아직 교차하지만 다행히 천년 고도 경주를 찾는 관광객은 회복세다. 지난 11월 경주를 찾은 관광객은 74만8919명. 지난해 11월 관광객(96만1288명)의 78%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상영 경주시 관광컨벤션과장은 “강진 직후 관광객이 줄고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며 “12월 관광객 숫자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우석 기자 choi.woo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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