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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대통령과 성형 시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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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 면

? VIP독자 여러분,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 때는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IMF 외환위기 속에 집권한 DJ(김대중 전대통령)는 고령과 건강이상설의 컴플렉스에 시달렸습니다. 측근 몇사람이 숙의 끝에 '대통령의 얼굴에 손을 대기로' 의기투합합니다. 용한 성형외과 의사를 찾아낸 이들은 고령(75세) 의 대통령이 젊고 활기있는 모습으로 보이게 해줄 것을 주문합니다. 청와대 앞 국군병원에서 시술키로 하고 D데이까지 정합니다. 하지만 시술을 며칠 앞두고 의사는 용기를 내 이렇게 말합니다.?"대통령께서 시술을 원하신다면 감쪽같이 해드릴 수 있습니다. 젊고 활력있는 얼굴을 만드는 건 간단한 시술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외환위기로 온 국민들이 금 모으기까지 하며 나라를 살려보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만약 대통령이 성형수술을 했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잃을까 걱정입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DJ는 "그 의사 말씀이 옳습니다. 내가 큰일 날 일을 저질를뻔 했네요. 이번 건은 없던 일로 합시다"라며 반색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75세 대통령의 시술 계획은 백지화됐답니다. 이 에피소드를 전한 인사는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증폭되고 있는 대통령의 성형 시술 의혹을 접하면서 같은 의료인으로서 최소한의 윤리의식마저 망각한 사람들에게 분노가 치민다"고 말입니다.? 여성 대통령의 얼굴 가꾸기를 매도하려는게 아닙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보톡스니,필러니 하는 미용 시술을 해선 안된다는 얘기도 아니고요. 기왕이면 카메라에 좀 더 근사하게 비쳐지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특히 대중의 주목을 받는 대통령이 외모에 관심을 두는 걸 비난할 맘도 없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통치행위의 일부입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언제,어디서,어떤 상황에서 했느냐에 따라 정치적 메시지는 180도 달라집니다. ? 술자리 뒷담화에서나 오가던 대통령의 성형 시술 의혹이 급기야 국회 청문회장에까지 등장했습니다. 푸르죽죽한 멍 자국과 주사바늘 자국이 선명한 대통령의 얼굴 사진을 보니 민망하기만 합니다. 사진이 촬영된 시기가 세월호 피해자 시신 인양 작업이 한창일 때이거나 그 유가족을 청와대로 불러 환담하던 당시라고 하니 답답한 가슴이 더 먹먹해집니다.? 최순실이야 그렇다고 치고,좋은 학교 나와서 대통령의 '각별한 은혜'를 입어 그 자리에까지 간 의사들은 한번쯤은 의료인으로서의 직업윤리를 생각해봤어야 한 것 아닐까요.충심으로 대통령을 위한다면 "지금은 국상(國喪)을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니,시술을 미루는게 좋겠다"고 대통령을 설득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환자가 요구하는대로 주사놓고 약 처방하고 주름 펴주면 그것으로 의사의 임무는 다하는 것인가요. 그게 의료인의 직업윤리인가요.? 이들뿐 아닙니다.'최순실 연출,박근혜 주연'의 막장 드라마는 사실 숱한 '조연'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문고리 3인방은 말할 것도 없고,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장관들,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수십,수백억원을 선뜻 내놓은 재벌 기업들,대통령이 밀어부쳤던 재단 사업에 기생해 특혜와 이권을 누린 문화·스포츠계 인사들,정유라의 특혜 입학을 눈감아준 대학과 관계자들…. 이들은 "VIP 관심사안"이란 말 한마디에 비리와 불·탈법을 주도하거나 고개 돌려 못본체 외면했습니다. 구중궁궐 안에서 벌어지는 부패와 농단을 한눈 질끈 감고 못본척 눈감아준 대가는 짜릿했을 겁니다. 청와대 담장 밖에서 그들은 각종 특혜와 이권을 누리며 권력을 탐닉했습니다. 황홀한 권력의 단맛에 빠져 직업윤리는 뒷전으로 내팽개쳐둔채 말입니다.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엄청난 국정 농단이 일어나는 동안 권력의 가까이에 있던 그 누구 한 사람 나서 "아니되옵니다"를 부르짖은 신하가 없었다는 사실은 2016년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2500여년전 공자는 세상의 바른 이치는 정명(正名)에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다시말해 이름(名)엔 거기에 부합하는 실제적 내용(實)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지금의 상황에 치환해 본다면,장관은 장관다워야 하고 수석은 수석다워야 하고 교육자는 교육자다워야 하고 의사는 의사다워야 한다로 바꿔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숱한 '조연'들이 눈 부릅뜨고 자리와 이름을 지켰더라면 최순실 게이트는 배아 단계에서 말라죽었을지 모릅니다.


?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리셋 코리아(Reset Korea) 요구가 봇물터지듯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손가락은 '자기가 아닌 타인 혹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경유착을 끊어야 한다느니,헌법을 고쳐야 한다느니 하면서 뭔가를 탓하는데 열중합니다. 국가의 틀과 제도를 고치는 하드 웨어 개조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각자가 자신의 자리값,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이젠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이름을 바로세우는 소프트 웨어 개조,정명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광장의 촛불과 함성이 드높았던 격동의 2016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격렬하게 달려왔던 지난 두달여를 돌이켜보며 '내 안에 최순실은 없었나' '내 안에도 김기춘이,또 우병우가 있었던건 아닌가' 자문해봅니다. 오늘따라 세찬 초겨울 밤 바람이 더욱 시리게 불어오는군요..


? #문 열리는 이란 시장 르포? 얼마전 미국 보잉사가 이란항공에 항공기 80대를 판매하는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79년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후 37년만입니다. 이달초엔 현대중공업이 이란 국영해운사와 선박 12척 수주를 맺었습니다. 가스 매장 1위,원유 보유 4위의 자원 부국 이란의 문이 이렇게 열리고 있습니다. 한류가 몰아치고 있는 이란 시장은 우리에게 다시없는 기회이지만 신정(神政)국가 체제에 따른 도전도 만만치 않습니다. 진 길,마른길 구별해 요령있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이란 '열공'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서방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풀린 후로는 처음으로 중앙SUNDAY 기자가 이란 정부의 초청으로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이번주 중앙SUNDAY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주무대인 페르시아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 #창조경제는 죄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 정부가 추진해온 창조경제 육성정책도 동력이 꺼지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전국 17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사실상 폐점을 기다리며 개점휴업 상탭니다. 관련 예산도 거의 뭉텅이로 잘려나갔습니다.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실패와 무관하게 창조경제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 버려선 안될 자산이자 전략입니다. 폐기 수순에 접어든 창조경제,어떻게 고쳐서 다시 재생시킬 것인가.이번주 중앙SUNDAY는 시대를 꿰뚫은 통찰력 깊은 전문가들의 집단 지성을 통해 창조경제 회생방안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나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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