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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방재센터도 관광 자원화 하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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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허정연 산업부 기자

허정연
산업부 기자

“지진을 많이 겪은 나라이니 대비책도 남다를 것 같아 들렀어요.” 지난 10일 일본 후쿠오카(福岡)시 방재센터에서 만난 한 한국인 관광객의 말이다. 방재센터는 지진 등 재난에 대비해 시민의 안전의식을 높이고 대피법을 익히기 위해 1992년 설립됐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 후쿠오카시가 운영한다.

시민을 위한 시설이지만 1년간(2015년 4월~2016년 3월) 이곳을 찾은 11만3000명의 방문객 중 8000명은 외국인이다. 국적별로는 한국인(2637명)·중국인(700명) 순이다. 지난 4월 인근 구마모토(熊本)현에서 발생한 규모 6.5의 지진으로 인해 이 지역 관광객 수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재난을 체험해 보자’며 센터를 찾는 방문객 수는 오히려 늘었다. 센터 관계자는 “경주 지진 이후 한국인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지진·화재·태풍 등 재난 상황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공간에서 체험해 보고 안내원이 대처법을 알려 주는 식으로 코스가 진행된다.

일본 후쿠오카 방재센터를 찾은 방문객들이 규모 9.0의 지진 시뮬레이션을 체험하고 있다. 본지가 흔들림을 표현하기 위해 포토샵 을 더했다. 이곳엔 외국인을 위한 팸플릿도 준비돼 있다. [사진 후쿠오카 방재센터]

일본 후쿠오카 방재센터를 찾은 방문객들이 규모 9.0의 지진 시뮬레이션을 체험하고 있다. 본지가 흔들림을 표현하기 위해 포토샵 을 더했다. 이곳엔 외국인을 위한 팸플릿도 준비돼 있다. [사진 후쿠오카 방재센터]

센터 측은 “지역 교육시설일 뿐 관광 명소로 활용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어·중국어·영어로 된 팸플릿을 비치하고 한국어 자막이 들어간 교육 영상을 트는 등 외국인을 위한 배려가 엿보였다.

8~9일 이틀간 후쿠오카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관광청·일본정부관광국(JNTO)이 주최한 ‘한·일 관광 교류 확대 심포지엄’ 행사가 열렸다. 올 한 해 양국을 오간 한·일 관광객 수는 740만 명으로 일본을 찾은 한국인(510만 명)이 한국을 찾은 일본인(230만 명)에 비해 배 이상 많았다. 엔고·지진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찾는 한국인 수는 몇 년째 증가세다. 반면 한국을 찾는 일본인은 2012년 독도 문제로 인한 경색을 기점으로 급감한 뒤 회복세가 더디다.

심포지엄의 두 나라 전문가들은 “외국인 관광객을 늘리려면 지방 관광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양국의 움직임은 차이를 보였다. 일본은 무리한 시설 확충이나 새로운 콘텐트 개발을 지양한다. 대신 기존 지자체 운영시설에 외국인 편의시설을 마련해 큰 투자 없이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후쿠오카의 방재센터가 대표적이다. 오사카(大阪)시가 운영하는 주택박물관도 연간 방문객 52만 명 중 27만 명이 외국인이다.

반면 한국 지자체는 매년 새 관광자원 개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손에 쥔 콘텐트는 외면한 채 특색 없는 축제나 쇼핑시설 확대에 집중한다. 관광의 최대 악재인 ‘재난’마저 ‘안전’으로 바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 ‘일본의 일상’이었다.

허정연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