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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법정에 선 「리옹의 도살자」|나치전범 「바르비」 파동학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파리=홍성호 특파원
「리옹의 도살자」로 물리는 전 나치비밀경찰간부 「클라우스·바르비」 (73)를 심판하기 위한 역사적 재판이 지난 11일부터 프랑스 리옹에서 진행되고 있다.
2차대전이 끝난지 40여년만에 프랑스 법정에 선 「바르비」의 죄목은 「인류에 대한 범죄」. 그는 1942년 나치독일의 프랑스 점령당시 점령군소속의 리옹시 비밀경찰(게슈타포)책임자로서 무고한 시민과 어린이들까지 무차별 죽음의 감방으로 몰아넣었다.
30대초반의 젊은 시절에 저지른 죄의 댓가로 40여년간을 남미 등지에서 숨어 지내다가 83년 프랑스로 끌려온 「바르비」는 나치시대의 인류학살 주역가운데 현재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
그러나 「바르비」의 뚜렷한 죄상에 비해 이번 재판은 복잡한 형태로 진행된다. 그것은「바르비」가 이미 지난 52년과 54년 두차례의 궐석재판에서 전쟁범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그 후 20년이 지나 형집행의 시효가 소멸됐기 때문.
따라서 이번 재판은 「바르비」의 전쟁범죄가 아닌 「인류에 대한 범죄」를 심판하는 형식을 따르게 된다.
70이 넘은 노인으로 법정에 선 「바르비」는 여전히 옛날의 군림하던 모습을 잃지않은채 『점령군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었던 권한만을 행사했을 뿐이며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 이라고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프랑스인들 가운데는 나치를 도와주어 살아남은 뒤 오늘날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것으로 행세하며 내로라하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자신의 재판을 계속할 경우 그들의 명단과 과거의 행적을 낱낱이 폭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따라서 이번 재판이 일종의 「레지스탕스 재판」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프랑스국민들, 특히 나치의 횡포를 직접 겪었던 노년층들은 「바르비」재판이 설사 프랑스의 옛 상처를 다시 끌어내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후세가 역사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숨김없이 역사적 사실들을 들춰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대인을 참살한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생환한 전 유럽의회의장 「시몬·베유」여사같은 사람은 「바르비」재판이 프랑스국민들의 나치에 대한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이 과거에 무엇을 어떻게 겪었는가를 보여줄 좋은 교육자료라고 말했다.
14일까지 4일간 계속된 신문에서 「바르비」는 자신이 볼리비아에서 지낼때 이미 시민권을 얻었으므로 볼리비아 정부가 추방을 결정한 것은 위법이며 그후 프랑스정부가 억류해온것도 불법감금이라고 주장, 재판을 거부할 뜻을 비춰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을 면전에서 듣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르비」는 전쟁직후 독일에서 미점령군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탈출, 51년 볼리비아로 숨어 들어 「알트만」이라는 가명으로 살아왔다. 한편 프랑스정부는 이보다 앞서 45년 그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고 특별수사대까지 편성, 83년 볼리비아 정부의 도움으로 체포, 리옹의 생 조제프감옥에 지금까지 구금해왔다.
나치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새삼스런 분노가 열화처럼 끓어오르고 독일점령군의 생생한 잔혹행위를 증언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는 있지만 사형제도가 없는 프랑스법정이 고령의「바르비」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형은 죽을때까지 말년을 감방에서 보내도록 하는 것 뿐.
법정주변에 3백여명의 특수명령을 배치해 재판과정의 「바르비이를 보호해야 할 만큼 그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있기 때문에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인으로 풀어주는 것이 어쩌면. 종신형보다 더 무거운 형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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