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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케치여행|"내 낙타 그렸으니 돈 내라" 주인이 생떼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중앙일보는 세계 여러나라의 풍물을 화폭에 담은 『세계풍물스케치전』을 호암갤러리에서 열고있다 (28일까지). 전시회 참여화가인 김기창 김형근 이규선 오승우화백의 여행에 얽힌 에피소드와 풍물스케치를 소개한다. <면집자주>
이집트여행은 처음부터 기분잡쳤다. 관문인 카이로공항은 입국절차가 까다로와 2시간이 넘어 걸렸다.
통관구역에서 샅샅이 검사했는데도 험상궂게 생긴 친구가 또 집을 풀라고 하고는 다짜고짜 그림 그린 합죽선 두자루를 빼들었다.
손짓으로 친구에게 줄 선물이라 안된다면서 대신 인?차 두상자를 내밀었더니 들은체도 않고 호주머니에 쑥 꾸겨넣고는 나가라고 몰아붙였다.
기분도 풀겸 배꼽춤을 보려고 우리나라 동산토건이 지은 으리으리한 예루살렘호텔을 찾았다. 12인조 밴드와 3명의 악사가 흥을 돋우고 남녀 두사람의 민속춤 (벨리댄스) 기능보유자가 온몸을 흔들고 비틀어 꼬면서 신바람나게 춤을 추었다.
이튿날은 차를 타고 카이로 시내를 한바퀴 돌아봤다.
이집트 파리는 찰떡 파리인지 어디나 달라붙기를 좋아 하는 모양이다. 그날 (81년7월13일)저녁 TV에서는 그 나라 운동선수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이 극성스런 파리는 그 선수의 얼굴에까지 달라붙었다. 한두번은 그냥 좇더니 세번째는 신경질적으로 내갈겼다. 결국 파리는 못 잡고 자기 뺨을 자기 손으로 친 꼴을 TV생방송으로 연출해내고 말았다.
마지막날은 3개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늘어선 기자에 갔다. 내가 피라미드를 열심히 스케치하고 있는데 낙타를 탄 소년이 다가왔다.
소년을 저만큼 가서 서있으라고 자리를 정해주고 박시시 (팁)를 주었더니 좋아라고 낙타 위에 앉아서 모델노릇을 해주었다. 낙타를 탄 소년을 모델로 여러장 스케치했다.
지금까지 저쪽에서 구경만하고 있던 낙타를 끈 노인이 나에게 다가와서 그림을 샅샅이 훑어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웬일인가 싶어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자기 낙타도 그림소재로 삼았으니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당신의 낙타가 아니다』고 말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운보 김기창
『세계풍물스케치전』 28일까지 호암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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