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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소설 『볼록거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캠퍼스의 5월은 짙은 라일락의 향기와 매운 최루탄의 가루가 불안스럽게 뒤섞이는 잔인한 달이다.
작가 임철우의 『볼록거울』은 총학생회를 재결성하려는 「불순한 학생들」과 이를 막으려는 「충실한 교수들」이 등장, 시험거부·시위·돌팔매·최루탄으로 뒤범벅되고마는 대학 캠퍼스가 무대다.
그러나 이 소설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비틀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같은 안타까움이 침묵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자의식에 대한 비참한 분노다. 대학은 모순된 현실의 집약처이자 성감대일 뿐이다.
한 시대의 허위와 그 허위가 파생시킨 거짓 언어가 쌓아올린 거대한 유리장벽. 그 투명한 벽 저편에서 이편의 안타까운 몸짓을 흡사 무성영화보듯 위험스레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작가는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 빚어내는 불신의 현실을 거대한 유리벽으로 상징하면서, 유리벽 이편이나 저편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든 「유리벽을 설치한 자들」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유리벽은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는 강한 희원과 함께.
이와 함께 이 시대의 잔인한 풍속이 돼버린 단순논리와 언어의 이반현상, 그리고 유리벽에 부딪쳐 피투성이가 돼버린채 널린 언어의 시체들 속에서 작가는 그러나 「언어의 순수성」만이 허위의 벽 속에 갇힌 자들의 마지막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외롭게 소리치는 것이다.
그러나 『저 거짓 언어의 벽 어느 쪽에 너는 서 있는가』하는 물음에는 현기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주인공 「그」는 볼록거울에 비친, 윤곽이 엉망이 돼버린 이 땅의 지식인에 다름아니다. 방관자와 참여자 사이에서 쩔쩔매고 있는 그의 딜레머를 그러나 차마 비웃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최대의 미덕, 즉 정직함 때문일 것이다.
송재헌 <서울 은평구 신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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