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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기업 혁신의 현장] 서프라이스 이케아…1000원짜리 그릇도 2년 공 들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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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스웨덴 엘름훌트 ‘이케아 왕국’ 가보니

이케아 직원이 스웨덴 엘름훌트 테스트랩에서 제품의 강도를 시험하고 있다. 60여 개 실험실에서 약 200여 개 제품에 대한 테스트가 이뤄진다. 화학·세척·촛불·냄새 테스트를 비롯해 15가지 이상의 과정을 거치며, 한 제품 당 평균 실험 기간은 6개월에 이른다. [사진 이케아그룹]

이케아 직원이 스웨덴 엘름훌트 테스트랩에서 제품의 강도를 시험하고 있다. 60여 개 실험실에서 약 200여 개 제품에 대한 테스트가 이뤄진다. 화학·세척·촛불·냄새 테스트를 비롯해 15가지 이상의 과정을 거치며, 한 제품 당 평균 실험 기간은 6개월에 이른다. [사진 이케아그룹]

이케아 본사가 있는 스웨덴 도시 엘름훌트는 일종의 ‘이케아 왕국’이다. ‘이케아 길(Ikea gatan)’이 따로 있을 정도다. 역에서부터 이케아 박물관을 시작으로 이케아 호텔, IOS(이케아오브스웨덴·제품개발연구소격), 테스트랩, 물류센터에 이르는 제법 긴 도로다. 엘름훌트 숲속 깊숙이 자리한 이케아 테스트랩 건물 전면엔 창문이 딱 두 개 나 있다. 직원들의 휴게 공간이다. 나머지 방은 모두 제품 실험을 위해 없앴다. 빛과 온도·습도까지 미세하게 조절하는 탓에 창문을 만들지 않는다. 최근 찾은 이케아 테스트랩에선 200여 개 제품에 대한 실험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한 제품 당 평균 실험 기간은 6개월에 이른다.

“이 컵은 아직 테스트 중이라 매장에선 볼 수 없어요. 테스트는 실험실에서 이뤄지지만 우리 직원이 이렇게 직접 사용해보고 개선점을 찾기도 합니다.”

연 2000개 신제품, 출시 전 15개 이상 실험 거쳐
쉼없는 혁신, 같은 의자값 40년 전보다 21% 내려
무선 충전 가구, 오븐 싱크대, 벨트 녹없는 자전거…
1만개 제품 파는 매장은 가전제품 전시장 방불

스테판 베틸슨 이케아 품질매니저가 고양이 그림의 머그 컵에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 이미 400번 넘게 씻은 컵이라지만 그림이 새 것처럼 선명했다. 이케아 제품은 출시 전 평균 6개월 간 15개 이상의 실험을 거친다. 화학·세척·냄새·촛불실험 등 독특한 테스트를 무사 통과해야 소비자를 만날 수 있다. 테스트랩에선 대형 식기세척기 3대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베틸슨은 “이 기기를 사용하면 일반 가정용 식기세척기를 450번 돌린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라며 “세척기에 한번 제품을 넣으면 보통 3~4주간 전원 버튼을 끄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원이라고 해도 실험실 문이 한번 잠기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섭씨 28도, 85% 습도로 맞춰놓은 방안에 여름용 소파 하나가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5주 간 실험을 거친 후에도 뒤틀리거나 곰팡이가 생기지 않아야 통과다. 옆 방 기계는 플라스틱 뚜껑을 여닫는 동작만 2000번째 반복 중이었고, 그 옆엔 식탁 의자 하나가 100kg 추 아래 깔려있었다. 베틸슨은 “우린 새 제품을 누군가 망가뜨리는 걸 좋아한다”며 “그래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43년 창립한 이케아에서 70년간 변하지 않는 원칙은 ‘매일 더 나은 생활(Everyday life better)’을 위해 적용한 민주적인 디자인’이다. 그러나 생산 방식부터 재료·기술은 혁신을 거듭해왔다.

이케아가 매년 선보이는 9500여 가지 제품 가운데 2000여 종은 신제품이다. 효율성과 기능성은 더하고, 불필요한 요소는 줄이는 방식으로 가격은 더욱 낮춘다. 올해 출시 40주년을 맞은 ‘포엥 암체어’는 40년 전보다 약 21% 낮은 가격에 판매 중이다. 카렌 프러그 IOS 퀄리티 매니저는 “최근의 혁신은 겉이 아닌 속 재료에서 비롯된다”며 “겉보기엔 같은 제품이지만 나사 대신 끼움촉(wedge dowel)을 사용해 가구 조립 시간을 80% 단축시켰다”고 말했다. 끼움촉은 이케아가 5년 동안 개발 중인 일종의 나무 나사다. 드라이버로 돌릴 필요없이 구멍에 넣고 고정 장치를 잠그면 조립이 완성된다.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의 아들이자 이카노그룹(이케아 관계사) 피터 캄프라드 회장은 올해 초 경영진에게 “작은 것에 신경 쓰라(Focus on the small thing)”고 주문했다. 프러그 매니저는 이에 대해 “어렸을 때 이케아 후라이팬을 사서 만족한 사람이라면 커서 부엌 전체를 살 가능성도 높다”며 “우리가 1000원 짜리 컵 하나도 허투루 만들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녹슬지 않는 자전거 ‘슬라다’(左), 1000원짜리 그릇 ‘오프타스트’(右). [사진 이케아그룹]

녹슬지 않는 자전거 ‘슬라다’(左), 1000원짜리 그릇 ‘오프타스트’(右). [사진 이케아그룹]

지난 6월 출시한 오프타스트(OFTAST) 그릇은 단돈 1000원이다. 제품을 디자인한 헨릭 프레우츠는 “견고한 강화유리로 제작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질릴 염려가 없다” 고 말했다. 이 제품을 만드는데 3D프린터로 제품을 시제품을 제작하는 디자인 과정부터 생산까지 약 24개월이 걸렸다.

디자이너 비엡케 브라슈는 “비용 제한 없이 아름답고, 기능이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그러나 낮은 가격으로 그런 제품을 생산하는 건 이케아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가격 조정을 위해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디자이너와 공급자가 협의한다. 제품 공급 업체가 세계 500여곳이 넘는 반면 이케아에 소속된 디자이너 수는 14명에 불과하다. 그중 2명은 중국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프로젝트에 적합한 외부 디자이너(약 150명)를 찾아 협업한다.

브라슈 역시 지난해 4월 출시한 니프리그 바구니 컬렉션을 위해 2주간 베트남에 머물며 수공예 장인들과 공동작업을 벌였다. 그는 “친환경 소재로 바구니를 만들고 싶었고, 수련 줄기는 적합한 재료였다”며 “반면 베트남에서 수련은 수상 이동에 불편을 주는 골칫거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 디자이너와 협업해 노하우를 배우면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정판으로 출시된 니프리그 컬렉션은 출시 한달 만에 전 세계에서 ‘완판(완전판매)’됐다.

무선충전 기능이 내장된 가구(左), 가전을 결합한 부엌 시스템(右). [사진 이케아그룹]

무선충전 기능이 내장된 가구(左), 가전을 결합한 부엌 시스템(右). [사진 이케아그룹]

이케아는 디지털 분야에서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958년 문을 연 엘름훌트의 이케아 1호점에선 1만 가지의 제품을 팔고 있다. 그중 매장 입구를 차지한 물건은 무선 충전 컬렉션이다. 간결한 디자인의 침대 협탁과 탁상 스탠드 위에 스마트폰을 올리니 자동으로 충전이 시작됐다. 안젤리나 호데게르만 이케아 홍보매니저는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는 것을 깜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예 가구에 충전기를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엌 코너에 들어서자 국내 이케아 매장엔 없는 가전제품이 즐비했다. 싱크대에 붙은 오븐과 선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세탁기를 파는 공간은 가전제품 전시장에 가까웠다. 호데게르만 매니저는 “월풀·일렉트로룩스와 협력해 이케아 부엌 가구에 가전을 접목했다”며 “이제 이케아가 파는 건 싱크대나 세탁기가 아닌 부엌 전체”라고 말했다.

이케아가 지난 5월 디지털 쇼핑 툴인 ‘퍼스트(First)’를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품의 종류와 색상·사이즈를 자유자재로 선택해 디지털 상에서 조합해보고, 실제 집에 배치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증강현실(AR)을 제품 카탈로그에 접목한 것이다.

이케아는 이에 더해 녹슬지 않는 벨트를 적용한 자전거를 선보이고, 이케아 식품을 활용한 ‘집밥 먹기 캠페인’을 벌인다. 이케아를 더이상 가구나 인테리어 기업으로만 볼 수 없는 까닭이다.

엘름훌트(스웨덴)=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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