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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현재의 수리, 과거의 수리와 만나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모나가 수리를 거칠게 바닥으로 밀며 같이 넘어졌다. 모나는 수리를 품에 안은 채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기 때문에 수리는 전혀 다치지 않았다. 수리가 놀란 눈으로 모나를 보았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65> 여섯 번째 그림

“모나? 무슨 일이에요?”

“네가 갖고 있는 걸 노리고 있어. 그래서 난 널 지켜야 해.”

모나는 수리를 일으켰다. 사비, 마루, 골리 쌤에게 빨리 나가자며 손짓을 했다. 그러나 이미 우주선의 입구를 막고 있는 단이족 거인들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들이 거대한 발로 쿵쿵거릴 때마다 우주선이 흔들렸다. 어쩌면 우주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겨날 정도였다. 수리와 친구들은 서로 손을 잡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려 했지만 단이족 거인들의 가랑이 사이를 헤매는 꼴이었다. 그러나 곧 이마저도 멈추어야 했다. 단이족의 거대한 발에 밟혀 죽을 판이었다. 단이족 거인들이 수리와 친구들을 죽이려고 쿵쿵쾅쾅 뛰고 있었다.

“이쪽으로. 어서!”

골리 쌤이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나 골리 쌤이 가리킨 방향은 우주선 내부였다. 더 깊숙이 들어가자는 얘기였다.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가면 결국엔 코너로 몰리는 거잖아요? 그건 안돼요.”

수리가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럼 우주선 밖으로 나갈래? 저길 봐. 밖을 좀 보라고!”

수리가 우주선 밖을 보니 괴물처럼 생긴 단이족 거인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전쟁이구나.”

수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는 수 없이 수리와 모나, 사비, 아메티스트는 골리 쌤을 따라 우주선 안쪽으로 내달렸다.

“학생은 선생님 말을 잘 들어야 해. 선생님이 우리를 살려주실 거야.”

마루는 뒤뚱뒤뚱 뛰면서 자꾸 긍정적으로 자기암시를 했다. 사실은 굉장히 무서웠다. 옷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뒤에서 달려오던 수리가 마루의 등을 한 대 툭 쳤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힘내.”

마루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이족 거인들은 수리와 친구들이 우주선 내부로 피할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난 한쪽 편을 들라고 강요당하는 거 무척 싫어하는데, 이런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장이족을 우리 편으로 설정해야겠다.”

우주선 안쪽으로 한참 달려갔지만 장이족과 단이족의 싸움은 계속되는지 뒤쪽에서 엄청난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소름이 돋았다.

상황이 급한데 수리는 방향을 잃고 말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방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직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수리는 처음에 네피림을 만났던 우주선을 떠올렸다. 우주선엔 허공에 뜬 계단이 있었다. 펜로즈의 계단이었다. 그 계단은 오른편에 위치해 있었다. 수리는 조심스럽게 오른편으로 이동해 계단 손잡이를 찾았다. 그리고 첫발을 디뎠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반대로 내려갈 수 없는 계단이었다. 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뿐이었다. 모두 한 줄로 손을 잡은 채 한 발 한 발씩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하나의 계단이 끝나면 허공을 건너뛰어야 다른 계단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수리는 비상한 기억력에 의존해서 매우 신중하게 움직였다.

계단의 꼭대기에 올랐다. 공기가 싸늘했다. 완전한 어둠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이 아닌 바닥에 발을 딛자 안심이 되었다. 수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흑암 속에 분명히 누군가 있었다. 사람의 숨결이 느껴졌다. 불현듯 아메티스트가 앞으로 성큼 걸어나왔다.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아메티스트는 당당하게 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리의 머릿속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수리는 아메티스트의 뜬금없는 행동이 괜히 불안했지만 기막히게 신비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감에 심장이 격렬하게 쿵쿵거렸다.

나비의 노래를 듣고 레뮤리아의 이름을 짓다

아메티스트는 여섯 번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속에 나타난 먼 옛날의 수리는 종족들과 함께 올두바이 계곡을 출발해 새로운 땅에 정착했다. 해안은 밟히는 모든 것이 형형색색의 보석이었지만 수리와 종족들에겐 그저 아름다운 돌일 뿐이지, 금전적 가치는 없었다. 새로운 땅에 도착하고부터 이상하게도 종족 간 다툼도 없었고, 갈등도 없었고, 경쟁도 없었다. 서로 웃었고 서로 사랑했다.

종족들은 새로운 땅의 위대함에 압도당해 있었다. 지금까지 통과했던 땅과 달랐다. 모든 것이 풍족했다. 항상 따뜻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마저 따스했다. 배고픔 때문에 올두바이 계곡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온전한 평화를 경험했다. 보이는 곳마다 새로운 산이 있었고, 그곳은 폭포를 품고 있었고, 폭포는 아늑한 동굴을 품고 있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달디단 과실이 열린 나무들이 지천이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달콤한 땅 열매들이 땅에서 올라와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 더 이상 배고픔은 없었다. 새로운 땅은 집을 지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동굴이 많았고, 새벽 이슬이 내리는 시간마저 온화했기 때문에 동굴 안에 잠자리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어디든 커다란 나뭇잎을 척척 깔고 덮고 자면 그뿐이었다. 하늘에 빽빽한 별빛마저 따뜻했으니까.

수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집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수리와 종족들은 땅의 중심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 어마어마한 집을 짓고 싶었다. 새로운 땅이 얼마나 넓은지 몇 개월은 걸려 중심에 도착했다. 수리가 땅의 중심에 도착했다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우주선 때문이었다. 비로소 태양이 세 개나 된다는 것도 알았다.

우주선은 낯설지 않았다. 수리가 한때 도착했던 넓은 바다 한가운데 플로레스 섬의 지하에 묻혀있던 우주선과 동일한 형태였다. 피라미드 우주선이었다.

“이곳이 진정한 집이다.”

수리가 종족들에게 말했다. 수리는 새로운 땅에 널려있는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돌들 중에서도 유독 반짝이는 황금과 수정으로 바닥과 벽을 가득 채웠고 왕좌를 만들었다. 불의 왕좌였다. 그리고 신성한 별의 칼을 불의 왕좌에 감추었다. 불의 왕좌 바로 밑에서는 황금과 수정을 에너지로 한 불꽃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수리가 보기에도 새로 정착한 땅은 너무 아름다웠고 너무 평화로웠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비들이 떼지어 날아들었다. 나비들은 수리와 같은 얼굴 모습이었다. 수리는 나비들의 노래를 듣자마자 말했다.

“레뮤리아! 이 땅은 이제 레뮤리아다!”

수리는 나비들이 부르는 노래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특별히 기억력이 뛰어난 나비들을 불러 모아 그 노래를 외워서 부를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수리도 그 노래를 기억하기 위해 어딘가에 저장할 필요가 있었다. 수리는 털종족 중에서 리키니우스를 불렀다. 리키니우스는 수리의 부름에 따라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수리가 통과해왔던 이 땅 저 땅들이 레뮤리아 땅 옆으로 와서 붙었다. 땅이 점점 커지자 공룡들이 몰려왔고 힐라몬스터도 찾아왔다. 수리는 자신이 데리고 온 여러 종족의 이름을 하나로 정해 불러야 했다.

“누이!”

그는 그냥 누이라고 이름 지었다. 누이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고귀한 자’라는 의미였다.

입구를 막은 단이족 거인들을 피해
우주선 안쪽으로 들어온 수리 일행은
펜로즈의 계단을 오르고
아메티스트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데

그 무렵, 단이족들이 나타났다. 네피림이 보낸 기계 거인들이었다. 황금이 필요한 네피림이 황금을 캐기 위해서 만든 기계들이었다. 수리는 생명체와 기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직 그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수리는 네피림과도 평화롭게 지내고 싶었고 단이족과도 평화롭게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이 황금을 가져가는 걸 보고만 있었다. 아직 수리에게 황금은 아름다운 돌일 뿐이었다. 네피림이 보낸 단이족은 불쌍할 정도로 일만 했다. 황금을 캐서 네피림에게 바치고 망가지면 폐기처분되었다. 그럼 네피림은 장이족을 보냈다. 수리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우주선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네피림과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우주선 안에 현재의 수리 일행이 나타났다. 단이족과 장이족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먼 옛날의 수리는 신중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우주선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현재의 수리와 사비, 마루, 아메티스트, 골리 쌤은 천천히 움직였다. 과연 누구를 만나게 될지 궁금했고 이상하게도 긴장되었다. 맨 앞에 있던 수리도 마찬가지였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다. 드디어 수리가 걸음을 멈추었다. 흑암 속에서 누군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리가 걸어갔다.

먼 옛날의 수리도 걸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 지점에서 만났다.

서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쌍둥이처럼 똑같이 닮은 수리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사비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지금의 수리와 먼 옛날의 수리는 서로 껴안았다. 사비, 마루, 아메티스트, 골리 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먼 옛날의 수리 뒤쪽에서 그들이 나타났다. 올두바이 계곡을 떠나 세상을 지나 함께 걸어오면서 한 가족이 되어버린 종족들이었다.

앞으로 인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종족들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 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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