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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소년’ 수술비 보태려 일일찻집 연 광산구 공무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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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8일 ‘1913송정역시장’ 내 카페에 마련된 일일찻집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사례관리팀은 관내 중학생의 간이식 수술비를 지원하기 위해 이날 찻집을 열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8일 ‘1913송정역시장’ 내 카페에 마련된 일일찻집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사례관리팀은 관내 중학생의 간이식 수술비를 지원하기 위해 이날 찻집을 열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커피 몇 잔 드릴까요?”

간염 앓는 중학생 부친 간이식 필요
가정형편 어려워 수술 엄두 못 내
구청 복지과 직원들 8일 찻집 운영
커피·떡 등 판 돈으로 병원비 지원

8일 낮 12시30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1913송정역시장 내 커피숍 ‘카페1913’. 광산구청 소속 공무원 김은경(36·여)씨가 어색한 말투로 손님의 주문을 받았다. 바로 옆에서는 동료인 김국희(32·여)씨가 서툴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커피와 유자차, 떡 등이 팔려나간 만큼 주문대 옆에 놓인 투명 모금함에는 지폐가 쌓여갔다. 이날 광산구청 공무원들이 사무실이 아닌 카페로 출근한 것은 광산구 송정1동에 사는 중학생의 간이식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광산구청 희망복지과 사례관리팀 강미순(54·여) 팀장과 직원들은 송광중 3학년 김민석(15)군을 돕기 위해 일일찻집을 열었다.

김군은 지난해 여름 갑작스런 두통과 현기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선천성 자가면역성 간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증세가 심해지면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진행돼 목숨을 위협하는 병이다.

김민석군과 가족들 캐리커쳐. [프리랜서 장정필]

김민석군과 가족들 캐리커쳐. [프리랜서 장정필]

아버지의 간을 이식받으면 나을 수 있지만 쉽지는 않다. 다문화 가정 출신인 김군의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만성 천식이 있는 김군의 아버지(53)가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한 달 수입은 100여만원이다. 필리핀에서 시집 온 어머니(49)도 자활센터에서 쇼핑백을 접으며 돈을 벌지만 김군과 고등학생 누나 등 4인 식구의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빠듯하다. 어머니는 심장질환에 허리디스크, 당뇨를 앓고 있다.

김군을 전담하는 통합사례관리사 박빈희(31·여)씨를 통해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사례관리팀 직원들은 일일찻집을 기획했다. 사례관리사들부터 간이식 수술비 마련에 나섬으로써 향후 주민들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사례관리사들은 집에 있는 재료를 가져와 차를 만들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 모은 돈으로 떡을 구매해 이날 행사를 준비했다. 동료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구청 내부 게시판을 통한 홍보 활동도 벌였다. 동료 공무원들은 이날 점심식사 후 일일찻집을 찾아와 차를 마시는 것으로 힘을 보탰다. 3000원인 커피와 차를 주문한 뒤 1만원 짜리 지폐를 모금함에 넣거나 팀 단위로 찾아와 5만원을 내고 거스름돈은 받지 않는 공무원들도 있었다. 인근 광주송정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 시장을 찾았다가 우연히 소식을 접한 외지인들도 방문해 20㎡ 남짓한 카페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행사 취지에 감동한 외부의 지원도 있었다. 카페 주인인 김국희 사례관리사의 가족은 일일카페를 위해 하루 장사를 포기하고 무료로 공간을 빌려줬다. 공무원들과 함께 차를 준비하기도 했다. 원두를 공급하는 업체 측도 무료로 원두를 제공했다. 김군의 학교 교직원들도 카페를 방문했다. 각계각층의 도움으로 모인 일일카페 수익금 327만원은 전액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에 지정 기탁 예정이다.

강미순 사례관리팀장은 “김군의 간이식 수술에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며 “김군이 사회의 온기를 토대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이웃들이 정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지원 문의는 광주 광산구청 희망복지과(062-960-8377) 또는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062-945-6688).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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