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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마트폰 핵심 아니다” 삼성 주장 손들어준 미 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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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말 그대로 ‘세기의 판결’이 됐다.

122년 만에 디자인 관련 새 결정
“배상액 4435억원 과해, 재산정해야”
‘둥근 모서리’ 특허 침해는 인정
삼성 측 “IT 기술 발전 촉진될 것”

삼성전자와 애플의 디자인 특허 소송에서 미국 연방 대법원이 미 특허법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 미 연방대법원은 6일(현지시간) 삼성전자의 애플 디자인 특허 침해에 따른 배상금 관련 상고심에서 대법관 8명 전원일치로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애플 아이폰의 ‘둥근 모서리’ 등 디자인 특허 3건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삼성이 부과받은 배상금 3억9900만 달러(약 4435억원)을 하급심 법원이 다시 산정하라는 결정이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애플에 지급한 배상금 중 일부를 돌려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전자는 연방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번 기념비적인 판결로 시장의 공정한 경쟁과 기술 발전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상고심의 핵심은 삼성전자가 침해한 애플 디자인 특허 3건에 대한 손해배상금이 적정한 지를 가리는 것이었다.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 특허 3건을 침해한 점은 앞서 1·2심에서 확정돼 이번엔 삼성이 상고를 신청한 배상금 문제만 다뤄졌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미 항소법원으로부터 부과받은 디자인 특허 침해 배상금 3억9900만 달러는 갤럭시S·S2 등 갤럭시 시리즈 20여 종으로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영업이익금 전체였다. 미국 특허법 289조에 따라 ‘제조물’(article of manufacture)의 일부 부품에서 특허 침해가 발생했어도, 제조물 전체의 가치나 특허 침해자가 얻은 전체 이익을 기준으로 배상액이 산정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방순회항소법원의 이 판결 이후, 삼성전자는 “배상액이 지나치게 많아 수용할 수 없다”며 연방대법원에 디자인 특허권에 대해 상고 허가 신청서를 냈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술의 진보에 따라 법원이 디자인 특허에 대해 새로운 판단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 연방 대법원이 디자인 특허권에 대해서 판단을 내놓은 건 122년 전인 1894년 양탄자 디자인 특허 소송이 마지막이라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스푼이나 양탄자에서 디자인 특허는 핵심 기능이었겠지만, 스마트폰은 다르다”며 “스마트폰에는 디자인과 무관한 놀라운 기능과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수많은 요소가 담겨있다”고 주장했다. 구글·페이스북·HP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은 “항소법원 판결이 그대로 유지되면 복잡한 기술과 부품에 매년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삼성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애플은 디자인에 제품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티파니·아디다스·크록스 같은 업체들의 지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연방대법원은 삼성을 비롯한 IT 기업들의 주장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문을 작성한 소니아 소토마요르 연방 대법관은 “접시 같은 단일 제품은 디자인이 제조물 그 자체에 반영돼 있지만, 여러 부속품으로 이뤄진 주방용 오븐 같은 기기에서는 디자인이 적용된 제조물을 정의하기가 더 복잡하다”고 덧붙였다. 미 연방대법원이 IT 기기에서 디자인 특허의 비중을 일반 제품과 다르게 본 것이다. 향후 IT 기술 기업들의 디자인 특허 침해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번 소송에서 특허를 침해한 제조물의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지는 않았다. 소비자에게 최종 판매된 제품을 제조물로 본 연방순회항소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고만 판단했다.

공은 다시 하급심으로 넘어갔다. 연방순회항소법원에선 정확한 배상액 재산정을 두고 다시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지게 됐다. 이 배상금 재산정 과정에 쏠린 산업계 관심도 뜨거울 전망이다. 수많은 기술·디자인 특허의 복합체인 IT 기기의 가치를 판단할 때 디자인 특허가 차지하는 비중을 얼마나 인정할 지가 핵심 쟁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오는 연방순회항소법원의 판단은 향후 미 특허법 289조 관련 소송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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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제품에 반영된 수많은 특허를 단순히 n분의 1로 나눠서 가치를 따질지, 핵심 특허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고 제품 판매에 그 특허가 미친 영향을 따질 지 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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