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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 김나현 기자의 블링블링] 사과는 제대로 합시다

중앙일보

입력

사진=tvn

사진=tvn

TV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8’(방영 중, tvN, 이하 ‘SNL’)을 둘러싼 논란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코미디언 정이랑이 배우 엄앵란을 패러디하는 과정에서 유방암 환자 비하 논란에 휩싸였으며, 그에 앞서 코미디언 이세영이 아이돌 그룹 성추행 논란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이세영과 관련된 논란이 점화된 것은, 11월 26일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에서 그가 호스트로 출연한 아이돌 그룹 B1A4 멤버들의 신체 일부를 만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해당 영상에는 제작진과 출연자가 생방송 녹화를 앞두고 사기를 돋우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이에 B1A4 팬들은 항의했고, 이세영과 제작진이 사과했으나 팬들의 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팬들은 ‘국민신문고’에 ‘성추행 혐의를 수사해 달라’는 글을 올렸고 이세영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이 문제를 심화시킨 것은 이세영과 ‘SNL’ 측의 진심 어린 반성이 느껴지지 않는 초기 대응이었다. 이세영이 자필로 작성한 사과문은 “촬영 현장에서 멤버들에게 사과했고, 모든 팬들에게 사죄하고 싶다. 반성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182자가량의 짧은 글이었다. ‘SNL’ 사과문은

“①해당 영상은 호스트의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자리였고, ②일부 크루들의 과도한 짓궂은 행동으로 많은 분에게 불쾌감을 드렸다, ③출연자 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해당 영상을 공적인 공간에 노출한 책임은 제작진에게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사과문에 ‘무엇을 잘못했느냐’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데다, 그저 ‘사태 수습용 사과’라는 인상이 강했다. 통상 사과의 3원칙을 ‘CAT’이라 부른다. 이는 ‘Content(내용)·Attitude(태도)·Timing(시기)’을 뜻한다. ‘SNL’의 사과에는 세 가지 원칙 중 ‘내용’이 부족했다. 반성과 책임을 논하기 이전에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면밀하게 밝혔어야 했다. ‘짓궂은 행동’이란 짧은 한마디로, 시청자의 언짢은 마음을 추스르고 이 문제를 봉합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사과의 목적은 내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다친 상대의 감정을 헤아려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텅 빈 사과는 오히려 화를 돋울 뿐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는 꼭 들어야 할, 성실하고 진실한 사과를 너무 오랫동안 듣지 못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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