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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정 10대 청소년 도운 경찰관의 손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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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중원경찰서 김설희 경장 [사진 경기 성남중원경찰서]

경기 성남중원경찰서 김설희 경장 [사진 경기 성남중원경찰서]

경기 성남중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김설희(34·여·사진) 경장은 지난달 9일 사무실에서 동료 직원 9명과 함께 손편지를 정성들여 썼다. 수신자는 얼굴도 모르는 성남 지역 22명의 피부과 의원 원장들이었다. 어려운 환경에 놓여 치료를 받지 못하는 A양(18)의 아토피 치료를 돕기 위해 의료지원을 요청하는 편지였다.

김 경장은 앞서 112신고 전화를 계기로 A양을 알게 됐다. 지난 7월 21일 “아이 울음소리가 난다”는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접수된 뒤 김 경장이 A양 가정을 방문하면서다. 그는 학대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토피와 지루성 피부염 등으로 A양의 얼굴과 온몸에 딱지가 났는데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A양이 중학교 3학년 때 어려운 가정형편과 학교 부적응 등으로 인해 자퇴한 뒤 온라인 게임에만 빠져 지낸 것도 파악했다. 당시 A양은 김 경장에게 눈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A양의 의료지원을 요청한 손편지 [사진 경기 성남중원경찰서]

A양의 의료지원을 요청한 손편지 [사진 경기 성남중원경찰서]

경찰 조사 결과 A양의 아버지(53)는 폐자원 수거용 화물트럭을 몰고 지방을 다니고, 어머니(40)는 뇌수막염 후유증을 앓아 A양을 제대로 치료해줄 형편이 되지 않았다. A양 부모는 A양은 물론 11살·생후 20개월된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기 힘겨운 상황이었다. 집 안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고, 주방은 기름때로 찌들어 있었다.

이후 A양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 김 경장은 청소년 단체 등을 통해 도움을 줄 방법을 수소문해봤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2년 이상 장기간 소요될 A양에 대한 치료 비용를 지원해줄 단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성남중원서 여청계 직원들은 무작정 관내 피부과 의원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러던 중 마침내 성남의 한 피부과 의원이 무료 진료 의향을 표했다. 이 의원의 원장은 A양의 상태를 진찰한 뒤 “병원비와 진료비·검사비 등 2년 동안 치료에 소요되는 병원비를 받지 않고 치료해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약값은 청소년 단체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다.

김 경장 등은 이와 함께 ‘사랑의 집수리 봉사단’과 힘을 모아 A양 집 안의 벽지와 장판도 갈아줬다. 또 학교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던 A양 동생을 위해 전문 상담사도 연결해줬다.

김 경장은 “A양은 요즘 ‘검정고시 합격 후 아르바이트로 동생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다’는 꿈을 갖기 시작했다”며 “A양처럼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작은 힘을 모아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성남=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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