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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에 「부실」떠안아 부실가속|범양상선의 현황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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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지난3일 산업정책심의회에서 우리나라 최대해운회사인 범양상선에 8천4백억원의 부채상환유예라는 금융지원을 해줬다.
빚이 1조원이 넘는 범양상선을 도산시켰을때 3천여명의 종업원이 일자리를 잃는것은 물론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큰데다 서울신탁은행등 돈을 꿔준 은행들도 자본금 잠식으로 쓰러지는 사태가 되므로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범양의 자산이라고 해봐야 63%가 만든지 10년이상 되는등 낡은배 84척뿐이니 어떻게하든 회사를 살려놓고 빚도 받아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박건석회장이 돌연 자살함으로써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하게됐다.
범양상선이 왜 이렇게 됐고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망>
경영권의 향방과 회사경영상태등 두가지로 나눠 알아 본다.
정부는 23일 부총리주재로 관계자회의를 열고 『현단계에서는 주거래은행이 자금관리를 맡고 현 경영진내에서 공동대표이사를 선임한 과도경영체제를 당분간 지속시키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과도경영체제로 2∼3개월 끌어가면서 사태를 진정시킨 다음 은행의 자금관리 결과와 국세청 조사결과를 토대로 추가적인 수습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그후의 대책은 아직 결정이 안됐지만 관계당국은 ▲박회장유가족의 동의아래 전문경영인을 세우는 방법 ▲제3자 인수 ▲은행부채를 출자전환시켜 공사화하는 방안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8천4백억원의 은행부채가 5년거치 10년 분할상환조건으로 유예돼 채무동결을 위한 법정관리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
당국은 이같은 여러가지 방안중 박회장 유가족이 경영참여를 포기하고 현재 임직원들이 뭉쳐 우리사주형식으로 기아산업처런 경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고 조심스럽게 방향을 모색중인 것으로 알러졌다.
그런데 엄청난 금융·세제혜택을 받은 범양상선은 95년에나 경영상태가 정상화돼 흑자를 낼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기획원이 지난번 산업정책심의회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범양상선은 금융·세제지원이 없을 경우 적자가 87년 7백58억원, 92년 1천33억원, 2001년 1천6백69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나 합리화조치로 94년까지 적자를 내다 95년에 35억원의 흑자로 반전, 2001년에는 2백6억원의 흑자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범양상선을 지원해주기로 한 대신 박회장이 사유재산 (부동산32억원, 유가증권 96억원, 계열사처분 66억원, 유상증자 1백16억원, 기타40억원) 을 처분, 총3백50억원을 마련해 은행빚을 갚도록 했는데 박회장의 자살로 유가족들이 이 계획을 이행토록 할 방침이다.

<현황>
범양상선이 안고 있는 부채는 86년말 현재 1조2백50억원이다.
이중 84년 1차합리화때 유예해준 몫을 빼도 이자로만 지출된 돈이 작년 한햇동안 7백69억원이나 됐다.
하루에 2억1천만원이 이자로 나가는 셈이다.
지급유예를 안해줬다면 이자만 1천1백78억원(연리11.5%기준)이 돼 하루에 3억2천3백만원씩 이자를 갚아야 한다.
작년에 범양상선은 3천3백39억원어치의 화물을 실어날랐으나 기름값·인건비·금융비용등으로 6백5억원의 적자를 냈다.
83년 적자가 2백42억원, 84년 3백68억원, 85년 4백13억원으로 적자는 계속 늘어나 4년간 누적적자는 1천6백28억원이나 됐다. 올해도 7백52억원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이에따라 자기자본금도 3백47억원이나 잠식당했다.
범양상선이 갖고 있는 배는 모두 84척 (선복량 2백만6천톤). 이중 만든지 10년 이하가 31척(74만4천톤), 10∼14년이 32척(73만톤), 15년이상이 21척 (53만2천톤)으로 10년 이상된 낡은 배가 63%나 된다.
낡은 배를 이처럼 많이 갖고 있으면 해운불황이후 과감히 낡은 배를 처분한 선박회사들과 경쟁할수가 없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톤당 하루경비가 선령15년이상 배는 18달러나 드는데 비해 3년짜리배는 9달러로 절반수준이다. 또 중고선 (3만7천톤급 살물선기준) 의 경우 과거 배값이 1천7백만달러였으므로 연간 감가상각비가 1백48만5천달러나 되는데 새배는 가격이 1천4백만달러로 연간 감가상각비가 69만3천달러에 불과하니 경쟁이 될수가 없다.

<부실원인>
표면상 직접적인 원인은 세계 해운경기 불황탓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이같은 것을 예측못하고 감량경영은 커녕 오히려 체중을 불렸고 경영진이 외화를 빼돌리거나 호화생활을 하는등 방만한 경영을 한 때문이다.
범양상선은 66년 당시 정계 실력자를 등에 업고 유공의 원유수송권을 따내 땅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로 돈을 긁어 모아 석유대리점에서 일약 재계서열 27위의 재벌로 등장했다.
유조선에서 출발, 비료·양곡·석탄등 덩치가 큰 화물을 장기계약으로 확보해 순탄하게 커 나갈수 있었다.
80년까지 해운호황때 떼돈을 주체못해 토지·건물등 부동산투자도 활발히 한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범양상선은 80년대들어 해운불황으로 사세가 기울면서 박회장과 한상연사장 사이의 틈도 벌어지고 경영진들이 편을 갈라 으르렁거리는가 하면 서로 재산챙기기 경쟁을 벌이는등 몰락을 재촉했다.
배부르면 인심이 후한법처럼 잘될 때는 별탈 없다가 불황이 되자 문제가 터진 것이다.
또 빚더미회사를 살릴 생각은 않고 회사돈으로 호화생활을 했으니 기울어짐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84년 부실회사를 떠안아 부채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삼미·삼익·세방·보운등의 부채 4천4백63억원을 떠안다보니 당시 3천5백12억원이던 부채가 7처9백75억원으로 대폭 늘어나 이자에 이자가 붙는 형식으로 부채가 커져 1조원을 넘게됐다. 영양실조로 혼자서도 비실비실 걷지 못하는판에 저보다 덩치가 큰 짐을 졌으니 쓰러질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회사지출은 늘어나는데 해운 불황으로 운임수입은 줄어들었으니 탈이 날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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