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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시는 민족문학의 기반"|영남대 윤영천 교수, 작품발굴·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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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 시문학사에서 정치적 이유, 문학이데올로기의 문제 등으로 인해 거론되지 않은 채 거의 사장되어온 유이민문학에 대한 최초의 본격 문학연구서가 출간되어 학계·문단 및 뜻있는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최근 윤영천 교수(영남대·국문학)는 일제의 경제적 수탈과 정치적 탄압을 피해 만주·시베리아·사할린·하와이·멕시코지역으로 흘러들어간 우리 민족의 비극적 삶과 애환을 담은 문학작품들을 발굴, 분석한 『한국의 유민시』(실천문학사간)를 펴내고 『식민지시대의 유이민시에 관한 논의는 궁극적으로 한국문학의총체적 인식을 위한 통일문학론으로 귀결된다』 고 주장했다.
일제가 조선의 완전식민지화와 토지강탈을 위해 설치한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면서 일반에는 「풍년 풍년 말도 말아라/지난해 흉년이 차라리 나았네/어여여으여루 상사뒤야」라는 탄식조의 민요를 비롯해 당시 농촌의 황폐함을 담은 각종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이민학의 동기를 이룬다.
이때의 처참한 민중의 삶은 30년대 발표된 현대시에 잘 반영되었다.한 시인은 농민의 일그러진 모습과 농촌의 피폐한 정경을 「설움과 근심깊은 죽음보다도 애닯은/무덤같이 쓸쓸한 마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죄어드는 생활의 궁핍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랑민이 생기고, 그들에게는 해외로 떠나는 것이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그리하여 정든 고향을 떠난 이주민 수는 갈수록 늘어 40년대 들어 간도 및 만주지역에 2백10여만명과 일본 및 사할린에 2백여만명 등을 비롯해 시베리아·하와이·멕시코 등지를 합치면 대략 4백50만명 이상이라고 자료는 밝히고 있다.
이는 당시 한반도 전체인구의 15∼20%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로 유이민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나 알 수 있다.
시베리아로 날품팔이 떠나는 한 노동자의 애환을 그린 「사랑하는 어머니/나는 갑니다/눈보라 휘날리는/북국나라로/돈벌러 정처 없이/나는 갑니다」라는 시가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사할린과 일본땅에서 아무리 죽도록 일해도 최소한의 생존조차 부지하기 어려웠던 그 시기의 조선인 노동자의 심정을 그린 「떠날 때도 빈빈 손 올때도 빈손/열열번 또 펴본들 힘없는 빈손」등에서도 절박한 심정은 나타나고 있다.
이밖에도 이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노예로 인간지옥에 꼴려간 멕시코 이민의 경우는 「가시밭에 몰아넣고 어저귀로 등을 치니/하일염천 집 낮았네 반도풍진 참담한 곳」이라고 참옥한 그들의 생활을 노래했다.
그들 유이민을 동족으로서보다는 <적화돼 가는 일종의 적>으로 몰아 붙이던 해방이후의 한심한 지적 풍토 때문에 유이민문학에 대한 연구가 소홀했다고 지적한 윤교수는 『해방 40년이라는 말보다는 분단40년이라는 표현이 오늘의 우리 현실을 가장 잘 집약해주는 것이라 한다면 「정치적 난민」으로서의 「유이민 현상」은 해방과 더불어 종식된 단순과거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고통스런 현실적 질곡』이라며 『유이민시의 연구는 이른바 순수시에 가리워졌던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학의 자생적 기반」을 확인하고 현대문학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양헌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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