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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츠 편집장 “기사를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독자와 대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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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의 온라인 경제매체 쿼츠(Quartz)는 2012년 창업 이후 급성장해 세계 미디어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4년 만에 월평균 순방문자(UV)가 2000만명에 달해 역사깊은 세계적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1500만명(추정치)을 넘어섰다. 기자 100여명이 일하는 쿼츠의 올해 매출은 3000만 달러(약 350억원)로 집계되고, 매년 늘고 있다. 창업 이듬해 380만 달러였던 점에 비춰보면 경이로울 정도다.

 쿼츠는 혁신적인 디지털 실험을 주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출범 당시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이 없었고, 지금의 홈페이지도 기사 나열이 아니라 쿼츠의 컨셉을 대표하는 소량의 기사만 올려놓는다. 기자들은 자동차ㆍ증권 같은 ‘출입처’ 대신 브렉시트,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 처럼 자신의 ‘옵세션(obsession)’에 대해 글을 쓴다.

 올초 선보인 아이폰앱 역시 쿼츠의 기사를 보기 위한 앱이 아니라 기자와 독자가 뉴스에 대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채팅 서비스다. 25만명이 구독하는 e메일 뉴스레터, 차트 공유 플랫폼 ‘아틀라스’도 모두 성공적이다. 이 모든 게 모바일 중심, 독자 중심 철학에서 나왔다는 게 쿼츠 측의 설명이다.

 쿼츠의 케빈 딜레이니 편집장은 지난주 서울 서소문동 중앙일보 본사를 찾아 이석우 디지털총괄, 남윤호 편집국장과 환담하고 레거시 미디어의 디지털 전환, 쿼츠의 한국ㆍ일본시장 진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안드로이드앱 출시 계획과 메시징 플랫폼 슬랙, 음성인식 인터페이스인 아마존 에코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챗봇 서비스 개발 계획도 공개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

-쿼츠는 혁신적인 시도를 많이 했다. 어떤 시도가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나.
 “디지털 환경에서 잘 먹히는 퀄리티 콘텐트를 만들어 보자는 게 출범 때부터 쿼츠의 미션이었다. 그래서 저널리즘이란, 기사란 반드시 이러이러한 형태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스마트폰에서 가장 편리하게 구동되는 최적의 콘텐트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지난 몇 해를 돌아보면 아무래도 챗앱이 가장 상징성을 갖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어떻게 뉴스를 접하는지에 맞춰 뉴스를 생산한 창의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케빈 딜레이니 쿼츠 편집장이 지난 24일 서울 중앙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규 기자

케빈 딜레이니 쿼츠 편집장이 지난 24일 서울 중앙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4년 전이면 그래도 PC 트래픽이 상당했을텐데 과감하게 ‘모바일 중심’을 선언한게 흥미롭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우선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트를 만들고, 시간이 남으면 PC용으로 만든다. 4년 전에도 미래 성장동력은 모바일에 있다고 봤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홈페이지도 필요없다고 판단했다. 현재 우리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하는 사람은 전체 이용자의 10% 가량 뿐이다. 또 전통적인 광고 영업 방식을 버리고, 네이티브 애드를 심화ㆍ다양화 하기로 했다. 물론 이 모든 건 이론적인 확신에서 시작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게 좋았다. 창업 준비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해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첫 출근을 했는데 의자도 없었다. 당연히 우리 가운데 누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할 시간도 없었다. 혁신적이고, 모두가 이론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과연 제대로 될까’ 했던 길, 그 길을 그냥 시간에 쫓겨 간 것이다.”

-쿼츠는 경제 미디어로 알려져 있는데 경제 뉴스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흔히 주식시장, 기업을 커버하는 걸 경제 뉴스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도 그런 뉴스를 취급한다. 하지만 우리의 타깃은 ‘경제’가 아니라 ‘경제인’‘기업인’‘증권맨’이다. 기존 언론이 설정한 ‘이것이 경제뉴스다’ 하는 경계를 두고 기사를 쓰는 게 아니란 말이다. 우리의 미션은 ‘새로운 글로벌 경제를 알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이다. 우리가 만드는 콘텐트가 기존의 경제지보다 매력적인 것은 독자군(群)을 봐도 드러난다. FT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0대 이상이라면 우리는 40대다. 회사에서 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지만 임원급은 아닌 사람들이다. 골드만삭스, 랜드로버, 세일스포스 같은 광고주들도 좋아한다.”

저널리즘이란 혹은 기사란 반드시 이러이러한 형태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무슨 기사를 어떻게 쓸지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나.
 “나는 창업하기 전에 16년간 WSJ에서 일했다. 오전에 편집회의를 하면 정치부장ㆍ경제부장 등이 돌아가며 발제하고, 편집국장이 지시를 내린다. 쿼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회의는 1주일에 2~3번 정도만 한다. 모든 기자가 슬랙에 항상 발제할 수 있고, 하루 중 언제나 기사를 출고한다. (자신의 아이폰을 꺼내 슬랙 채팅방을 보여주며) 기자들이 기사의 제목, 길이, 언제까지 쓸 수 있는지 등을 다 여기에 올린다. 우리 기자들이 뉴욕, 런던, 나이로비 등지에 흩어져 있어 이렇게 하는 게 용이한 측면도 있다. 아무튼 기사 마감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언제나 꾸준히 기사를 올린다는 게 핵심이다. 그게 독자가 기사를 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초기엔 홈페이지가 아예 없다가 지금은 기사 몇 개만 올려놨던데 이유가 있나.
 “홈페이지는 마케팅 툴이라고 생각한다. 홈페이지를 아무리 잘 만들어봤자 극소수의 사람들만 보기 때문에 우리 콘텐트 공급 창구로서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콘텐트 공급은 각종 소셜미디어 채널로 한다. 그렇다면 홈페이지는 처음 쿼츠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쿼츠란 이런 것’이라는 강력한 느낌을 줘야 한다. 다른 언론사들처럼 최대한 많은 기사를 늘어놓는 것보다 특이한 홈페이지 레이아웃을 활용하면 이용자가 더 큰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다음에 내가 당신을 다시 만날 때 우리 홈페이지의 모습은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쿼츠는 디지털 실험을 중요시 하는 조직이다. 아마 모든 기자가 ‘왜 내 기사를 홈페이지에 안 올려주냐’고 불평하는 대형 언론사에서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가능하고 타사와의 경쟁에서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이쿠(俳句) 형태로 증시 시황을 알려주는 쿼츠의 서비스(위)와 WSJ의 전통적인 시황 기사(아래). 박성우 기자

하이쿠(俳句) 형태로 증시 시황을 알려주는 쿼츠의 서비스(위)와 WSJ의 전통적인 시황 기사(아래). 박성우 기자

 -소셜미디어에 너무 의존하게 되는 문제는 없나.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4년 전 우리는 독자가 한 명도 없었다. 현재는 2000만명이다. 모두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드인, 구글 등을 통해 들어왔다. 페이스북 등이 지난 수년간 알고리즘을 바꿔왔지만 쿼츠는 그 기간동안 계속 성장해 왔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플랫폼에 과도하게 최적화(over-optimize)하지 않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문제라면 애플뉴스, 플립보드도 있고 중국 위챗도 있다. 독자가 소셜미디어에 있는데 의존을 우려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존 거대 경제매체인 FT나 WSJ와는 어떻게 차별화 했나.
 “재미와 중요성 사이의 경계선상에 있는 콘텐트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WSJ 시절, 기업의 실적 발표를 처리하는 게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FT나 WSJ는 ‘○○기업, 3분기 실적 급감’ 식의 정형화된 기사를 쓴다. 우리는 다르다. 한 번은 바나나 리퍼블릭의 모회사인 갭의 실적 발표가 있었다. 그걸 우리는 산업부가 아닌 패션담당 기자가 처리했다. 그 기자는 갭 CEO가 컨퍼런스 콜에서 ‘바나나 리퍼블릭 여성복의 팔 들어가는 곳이 너무 좁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그걸 제목으로 뽑아 기사를 썼다. 퀄리티 컨트롤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또 정형화된 문구를 쓰는 대신 실적 추이 차트를 올렸고 기사 분량은 250단어 내외였다. 정형화된 실적발표 기사는 이제 AI(인공지능)도 쓸 수 있다. 겉보기엔 점잖지 못해도 독자의 시각에서 창의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훨씬 저널리스틱 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늘 실적발표 기사를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독자 A에게 이 얘기를 최대한 재미있게 해줘야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보기엔 점잖지 못해도 철저하게 독자의 시각에서 창의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을 찾아내는 게 정형화된 신문기사보다 훨씬 더 저널리스틱 하다고 생각한다"

 -쿼츠가 최고로 생각하는 가치는 뭔가.
 “독자를 엔터테인하는 일이 우리의 큰 역할이라고 본다. 아까도 말했듯이 재미와 중요성 사이 경계선상을 지향한다. 모바일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보면 메신저로 대화하고,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를 보고, 게임을 한다. 기사 읽는 것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가 메신저와 페이스북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뉴스를 게임으로 만들어서 성공할지는 모르겠다(웃음). 또 출입처 개념을 타파한 옵세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게 교통 분야다. 기존 언론의 기자들은 다 자기 출입처에 몰두해 있다. 하지만 테슬라가 우주여행을 시작하면 누가 커버하나. 우버는 자동차 담당이 하는 게 맞나. 옵세션이 더 독자 친화적인 개념이다.”

 -뉴스 비즈니스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긍정적으로 본다. 대형 언론사는 아직 너무 종이신문 중심이다. 독자 확보건, 광고건, 종이신문 중심의 경영전략은 이미 생명력을 잃었다. 디지털에 적응해야 한다. 돌아갈 곳이 없다. 그런데 이 적응 과정은 기존 기자들에겐 너무 고통스럽고, 따라서 저항이 많이 따른다. 빨리 적응하지 못해서 망하게 된 경우도 많이 봤다. 쿼츠가 너무 소규모라고 생각하면 우리 모회사 애틀랜틱 미디어를 참고해도 좋다. 1857년에 설립된 영향력 있는 매거진이다. 지난 10년간 굉장히 공격적으로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디지털로 전환했다. 현재 애틀랜틱의 디지털 구독자는 3000만명에 달한다. 디지털 전환에는 공격성과 장기적 안목이 둘다 필요하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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