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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잉여현금 50% 주겠다, 주주에 손 내민 이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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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가 지배구조 개편을 공식화했다. 삼성 발(發)로는 처음으로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용어가 본격 등장했다.

지배력 강화로 체제 굳히기
보유지분 높여 동시해결 노려
“엘리엇이 가려운 곳 긁어 줘”

삼성전자는 29일 이사회를 열어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확정하고 발표했다. 지배구조 개편 언급은 대규모 주주환원 정책과 함께 공개됐다. 세부 내용으로는 ▶지주회사 전환 검토 ▶글로벌 기업 출신 사외이사 1명 이상 추천 ▶2016년과 2017년 잉여현금흐름의 50%를 주주환원에 활용 ▶2016년 4조원 배당 ▶3년마다 현금 수준 점검해 적정 초과분은 주주 환원 등이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날 발표가 ‘지배구조 강화’와 ‘주주 친화’를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선 이날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대목이다. 삼성이 지주사 전환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시장에서는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전자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삼성전자는 자사주 13.15%를 갖고 있는데 인적 분할하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는 동일한 비중으로 자사주를 보유하게 된다. 이후 두 회사 간에 자사주를 맞교환(스와프)하면 지주사는 사업회사에 대해 자사주 지분율만큼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 지분 1%(164만327주)를 늘리려면 주당 가격을 160만원으로 쳐도 2조6245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인적 분할은 삼성전자 지배구조 강화의 ‘묘수’로 불려 왔다. 앞서 지난달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도 삼성 측에 보낸 ‘주주가치 제고 방안’ 서한에서 삼성전자 인적 분할을 제안했다. 당시 엘리엇의 제안을 두고 “삼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줬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삼성이 가고 싶은 방향이나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려운 방안’이어서다. 조명현(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간 대기업의 지배구조 강화는 복잡한 출자구조와 지분 관계를 악용해 꼼수를 부리는 일이라는 편견이 많았다”며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을 공론화한 만큼 어떤 지배구조가 삼성과, 삼성 주주와, 한국 경제에 좋은지 논의의 장을 펼칠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 방향에 대해 “중립적 입장에서 검토하겠다”는 표현을 썼다. 삼성 관계자는 “중립적이란 말은 어떤 단일안에도 치우친 입장이 아니라는 뜻”이라며 “지주사 체제를 포함해 모든 가능한 지배구조 강화 방안을 두루 검토해 보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외부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의뢰할 예정이라면서 “전문가 의견 수렴에 최소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전략·운영·재무·법률·세제·회계 등 경영 전반에 걸쳐 다양한 검토를 하려면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장 일각에서는 삼성이 스스로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밝힌 대목을 두고 지배구조 강화 일정을 사실상 미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정 운영이 사실상 멈춰 서고,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조사 증인 출석이 예정돼 있는 데다 야당이 다수인 국회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보험업법 개정안 등 삼성을 타깃으로 한 법안을 대거 발의해 놓은 상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 삼성전자가 지배구조 개편을 빠르게 마무리 짓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 친화 정책으로는 잉여현금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폭을 대폭 늘린 방안을 내놓았다. 잉여현금흐름이란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에서 투자로 지출한 돈을 뺀 현금 규모를 말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잉여현금흐름의 30~50%를 주주환원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올해 이를 강화했다. 배당금으로 4조원을 책정한 것도 지난해 3조1000억원에 비해 30% 늘린 액수다. 이에 따라 올해 주당 배당금은 지난해보다 36% 상승한 2만8500원에 달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3년마다 현금 보유량을 따져 투자나 인수합병(M&A)에 필요한 적정 현금 65조~70조원을 넘는 보유분에 대해서는 주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미래가치 창출을 위한 투자 여력을 확보하되 이를 초과하는 현금은 주주들의 몫으로 돌려준다는 의미다. 권오현 부회장이 이날 콘퍼런스 콜에서 “혁신, 품질 향상, 마케팅 역량 강화 같은 투자를 지속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주주가치 제고에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의견을 모았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과 같은 167만7000원을 기록했다.

박태희·임미진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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