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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똑닮은 영화 '판도라'

중앙일보

입력

영화 `판도라` 스틸컷

영화 `판도라` 스틸컷

“이제서야 궁금해지셨습니까. 그동안 대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원전 사고 이후 현장을 수습하던 발전소 소장(정진영 분)은 대통령(김명민 분)을 향해 이렇게 묻는다. 동남권에 6.1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한별 1호기에 균열이 가고, 압력이 상승하는 동안 방출 허가를 내주지 않아 원전이 폭발한 상황에서, 이미 높아진 방사능 수치로 국민들이 모두 피난길에 올라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걸려온 전화에 대고 말이다.

다음달 7일 개봉을 앞둔 영화 ‘판도라’ 속 장면들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국내 최초로 원전을 소재로 만든 영화라고 하지만 우리가 뉴스에서 익히 봐오던 장면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정보가 밖으로 새나갈까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도, 대기업의 이해 관계에 얽혀 사람의 목숨보다 경제적 손실을 더욱 두려워 하는 모습도 닮았다. 40년이나 된 원자력 발전기에 냉각수만 잘 넣어주면 안전하다며 “과학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치켜세우는 것 역시 숱하게 들어온 말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과 싱크로율이 높은 것은 바로 무능력한 대통령의 모습이다. 강석호 대통령은 번번이 총리(이경영 분)에게 발목을 잡힌다. 원전의 위험함을 경고한 실태보고서를 전달받지 못하고, 컨트롤타워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금 경보를 발령하면 20km 반경 내에는 94만명, 30km 내에는 334만명을 넘어 전 국민이 동요한다”는 주장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뿐이다.

영화 `판도라` 스틸컷

영화 `판도라` 스틸컷

세월호 사고부터 최순실 국정 농단까지 현 시국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에 29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는 관련 질문들이 쏟아졌다. 대통령을 맡은 배우 김명민은 “총리만 잘 만났어도 이렇게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히진 않았을 텐데 아쉽다”며 “저는 재난현장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청와대에서 편안하게 연기해서 다른 분들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실제 대통령이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최고 수장으로서 재난 현장 한 번 가보지 않고 상황통제실에서 모든 걸 처리해야 하는 게 답답했다”고 덧붙였다.

‘연가시’(2012)에 이어 다시 한번 재난영화에 도전한 박정우 감독은 “4년 전 영화를 시작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며 “다른 영화 같았으면 예지력이 있나보다 하고 자뻑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만들었는데 현실화되는 것이 두렵다”고 밝혔다. 크라우드 펀딩 최고액인 7억원을 모집하고 한국영화 최초로 넷플릭스와 월드와이드 배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쏟아지는 관심에 대해 박 감독은 “내심 잘 되길 기대하고 있는데 저희 상대는 다른 영화가 아니라 아줌마 둘”이라며 “우리는 4년 준비했는데 저쪽은 40년을 준비했고, 저희는 제작비가 150억 밖에 안되는데 저쪽은 몇천억인데다 모든 장르를 다 망라하고 있어 이길 수가 없다”고 답했다.

극중 강석호 대통령은 각성 후 현장의 소리를 직접 듣고 용단을 내리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똑같이 고개를 숙이지만 국민에게 도움을 청하고 함께 이 난국을 헤쳐나가주길 당부한다. 반면 29일 제3차 대국민담화 앞에 선 우리 대통령은 “여야가 논의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으로 정권을 이양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며 다시 한번 책임을 떠넘겼다.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영화에서처럼 희망을 볼 수 있을까.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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