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운전기사의 월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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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며칠 째 계속되던 서울택시노조원들의 농성과 시계가 노사의 원만한 협의로 일단 수습되었다.
최대의 쟁점이었던 「업적급」을 점차로 개선하겠다는 데 합의하고 올해 임금협정에서도 이를 부분적으로 반영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본 것 같다.
3년 전 대구시내 교통을 무려 13시간이나 마비시켰던 격렬한 집단행동을 경험했거니와 이번 서울시내 운전기사들의 집단시위와 농성을 크게 우려했었다.
운전기사 1천 여명이 서울거리에서 집단시위를 벌였다는 것도 그렇고 차량에 불을 겨고 경적을 울리면서 교통을 마비시켜 시민들의 불편은 물론 사회적 불안도 적지 않았다.
원만히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를 운전기사들이 구태여 길거리에 까지나와 소란을 피우는가 하는 원망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가뜩이나 고달픈 운전기사들이 길거리에 나와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곡절도 이해해 봄직하다.
수습이 되었기에 다행이지만 이번 사태에서 사업주나 당국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모순이 있으면 불만이 생기고 불만이 해소되지 않고 축적되다 보면 폭발하게 마련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부당한 구석이 있는데 누르기만 하고 임시 미봉책이나 속임수로 그때그때 적당히 넘기려들면 불평이 나오고 적대감까지 생겨 끝내는 사단이 생기고 마는 법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월급제 만해도 그렇다. 현행 27만원의 월급은 임금구조로 보아 명목상의 월급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기본급은 18만9천6백원이고 나머지는 근속연한이나 근무날짜·시간 등에 따라 가감되는 각종 수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이 아프거나 사정이 있어 조퇴나 결근을 하게 되면 수당이 줄어들고 월86만2천 원의 사납금(하루 3만3천1백50원 꼴)을 제대로 못 내면 무능력자로 찍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할 위험마저 있다.
또 월정 사납금 이상의 수입을 올리면 업주와 운전기사가 4대6의 비율로 나둬 가질 수 있어 현행 월급제는 도급제를 겸한 불완전 월급제인 셈이다.
이 때문에 업적금을 올리려고 난폭과 과속·곡예운전을 하게 되고 합승행외를 일삼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자가용 승용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무리한 합승과 난폭 운전이 불가피하고 교통법규 위반과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있다고 말하고있다.
이에 반해 업주들은 운전기사들에게 완전 월급제를 적용하면 고질인 삥땅과 근태행위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고 맞서 왔다.
양측의 주장을 들으면 그 나름의 이유와 딱한 사정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운전기사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은 개선되어야 하며 분배의 공정성은 지켜져야 한다. 지금처럼 택시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가 수없이 빚어지고 합승행위가 극도로 문란해 승차질서와 시민들의 불편이 뒤따르는 중요한 원인이 「업적급」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임금체계는 정상화되어야 마땅하다.
택시 서비스업이 다른 어느 업종보다 공공성을 띠었다는 점 외에도 업자들의 이해관계로 공중이 더 이상 희생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울의 어느 택시회사는 완전 월급제 실시로 운전기사들의 서비스가 두드러지게 개선되었고 사고율도 그게 떨어졌으며 운전기사들의 실질소득도 높아져 노사협조분위기가 정착, 성공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지난번 택시요금을 사실상 인상했던 거리· 시간 병산제 요금실시의 전제도 월급제였고, 다른 나라에서도 다 하는 완전 월급제를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지난해 택시업계의 노사분규가 우리 나라 전체 사업장의 66%나 되었고 분규원인의 대부분이 업적급에 연유했다고 하니 해결해야 할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는 익히 알 수 있다.
이제 해묵은 고질이 차차 치유되기에 이르렀다.
이번 사태에서 서로가 양보하고 성의를 다하면 어떠한 어려운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걸 체험했을 것이다.
이 소중한 경험이 정치와 사회, 전 사업장의 본보기가 되어야할 것이고 앞으로는 걸핏하면 무기로 쓰여온 「집단 행동」이 등장하기 전에 타협하는 슬기를 보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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