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가정 혈압 중요한데 측정 권유 어려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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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훈 기자]

국내 의료진들은 고혈압 관리를 위해 가정혈압 측정이 중요하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으나 정작 환자들에게 권고하고 교육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정용 혈압계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올해 2월 1일부터 3월 3일까지 약 한 달간 전국의 고혈압을 진료하는 의료진 총 331명(종합병원 심장내과 80명, 일반의원 내과 251명)을 대상으로 ‘고혈압 환자의 가정혈압관리에 대한 한국 의료진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의료진 10명 중 9명 “고혈압 관리에 가정혈압 중요”

조사 결과, 전체 응답 의료진 10명 중 9명은 ‘고혈압 관리에 가정혈압과 진료실 혈압 모두 중요하다(진료실 혈압 90.6%, 가정혈압 89.4%)’고 답했다. 특히, 가정혈압, 진료실혈압의 상대적 중요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과반(53.5%)이 ‘두 혈압의 중요도가 같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29.9%는 ‘가정혈압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또 ‘정확한 고혈압 진단을 위해 가정혈압도 측정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88.5%를 차지했다. 특히 응답자의 73.5%는 ‘약을 꾸준하게 복용하는 환자라도 가정혈압을 측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측정한 가정혈압 수치가 정확하다고 여기는 의료진은 35%에 불과했다. ‘가정용 혈압계가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32%에 그쳤다. 환자들이 측정해 온 데이터에 대한 신뢰는 상대적으로 낮은 셈이다.

가정혈압은 환자가 가장 안정된 상태에서 혈압을 측정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치가 정확한 것으로 여겨진다. 장·단기적으로 동일 시간대의 혈압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는 장점 외에도, 고혈압이 아닌데 병원에서 측정하면 높게 나오는 ‘백의 고혈압’과 반대로 평균혈압은 높은데 병원에서 측정하면 정상으로 나오는 ‘가면 고혈압’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 왔다. 최근 미국, 영국, 일본과 같은 해외 국가에서는 효과적인 고혈압 관리를 위해 가정혈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교육 인력·프로그램 부족, 가정혈압 활용 어려움

이렇게 의료진들은 가정혈압 관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권유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응답자의 55%가 ‘가정혈압 측정을 권유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가이드라인에 따른 가정혈압 측정법을 모두 환자에게 설명하는 의료진은 6.2%에 그쳤다. 진료실 밖에서 측정한 혈압이 필요할 때 36.8%는 ‘가정혈압을 측정하게 한다’고 응답했으나, 응답자의 50.2%는 ‘(가정 혹은 공공기관, 은행 등의 외부에서) 환자가 편한 방식대로 측정하게 한다’고 답했다.

고혈압학회는 이 같은 결과가 가정혈압 교육을 시행하기 어려운 환경에 따른 영향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응답자들은 가정혈압을 진료 현장에 활용하기 어려운 이유로, ‘현재 병·의원 시설에 가정혈압 교육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이나 전담 인력이 없다(92.4%)’는 것과 ‘가정혈압 측정에 대한 국민 인식 향상 필요(58.9%)’를 꼽았다.

가정혈압을 더 많이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로 ‘가정혈압 측정의 중요성 강조(38.7%)’ ‘가정혈압 데이터 활용 방안에 대한 구체적 설명 (32.9%)’을 꼽았다. 또 ‘가정혈압 관련 환자 상담에 대한 별도의 수가가 책정돼야 한다(32.3%)’는 의견도 있었다.

고혈압학회, 원내 가정혈압 교육자료 배포

고혈압학회는 가정혈압 측정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국내 진료 환경에 맞추어 가정혈압 관리 교육자료를 개발했다. 교육자료 개발을 진행한 고혈압학회 혈압모니터연구회 신진호 교수(한양대병원 심장내과)는 “교육 자료에 시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대부분이 고령인 고혈압 환자들에게 효율적으로 올바른 측정법을 안내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라고 설명했다

교육자료는 가정혈압 측정 방법의 핵심을 한 그림에 담은 포스터와, 쉬운 그림으로 측정 순서를 설명하는 책자로 구성돼 있다. 포스터는 진료실에서 환자 교육 시에 활용 할 수 있으며, 책자는 원내에 비치하거나 스탭 교육에 사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의료진들은 진료시간에 간편하게 가정혈압 측정법을 안내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인식조사 결과는 ‘고혈압 저널(Journal of Hypertension, 제34권)’ 및 세계고혈압학회 포스터 세션을 통해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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