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의료원 두경부암 맞춤형 정밀재건
“혀 밑에 뭐가 나서 피곤해 그런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 설암이라고 하니 아주 놀랐죠.”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진기수(55)씨의 발음은 혀의 절반을 잘라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또렷했다. 진씨는 2년 전 경희대병원에서 두경부암 중 하나인 설암 2기로 진단을 받았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 지 1주일 만에 혀의 절반을 잘라내고 팔뚝 살로 혀를 재건하는 10시간의 대수술이 이어졌다. 진씨는 “처음엔 목에 호스를 끼워 음식물을 넘겼다”며 “지금은 사람들과 만나 밥 먹고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이비인후과·구강악안면외과 주축
수술·항암·방사선 치료효과 예측
진씨처럼 얼굴에 암이 생긴 두경부암은 치료가 까다롭다. 자칫 숨쉬고 말하고 맛보는 즐거움을 잃기 쉬워서다. 두경부암은 눈·뇌를 제외하고 얼굴·목에 암이 생기는 걸 말한다. 정교하게 종양을 제거하고 수술 부위를 재건해 기능을 회복하는 치료 기술이 요구된다. 경희대병원이 이비인후과 은영규 교수와 경희대치대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이정우 교수를 주축으로 두경부암 분야에서 맞춤형 정밀재건 치료시스템을 구축한 배경이다.
암 수술에선 암이 생긴 부위를 포함해 주변까지 깨끗이 도려낸다. 재발·전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얼굴에 생긴 암은 그럴 수 없다. 은영규 교수는 “뇌에서 내려오는 모든 미세신경과 혈관이 지나고 표정근·저작근처럼 조밀한 근육이 모여 있는 부위가 얼굴”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얼굴 골격에 생긴 변화는 미묘하더라도 눈에 잘 띄어 환자 심리가 위축되기 쉽다. 두경부암 치료에서 기능과 형태를 회복하는 게 환자의 수술 예후를 판가름하는 지표다.
미세신경·근육 모여 고도 기술 필요
경희의료원의 협진 시스템은 이렇다. 먼저 수술 전에 두경부 기능 회복과 미용을 고려해 치료 계획을 세운다. 예컨대 잇몸에 난 종양을 제거한 뒤 씹기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환자에게 임플란트 시술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면 재건에 사용하는 뼈를 임플란트 시술에 적합하도록 변형해 이식한다. 이정우 교수는 “수술이 끝난 뒤에야 기능을 되살리려고 하면 또 다른 수술이 필요하거나 치료 방법이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수술이 결정되면 각 과의 업무는 명확히 분담된다. 이비인후과 은영규 교수는 암이 생긴 부위를 잘라내고, 구강악안면외과 이정우 교수는 잘라낸 부위를 재건하는 데 집중한다. 두경부암의 경우 재발하거나 전이되는 환자가 전체의 50~60%에 이른다. 재발·전이를 조기에 파악하기 위해 치료에 참여한 과가 함께 추적 관찰한다.
두경부암에서 이비인후과와 구강악안면외과의 협진이 중요한 암은 구강암·비강암·인두암이다. 이 외에 후두암·침샘암·갑상샘암 등도 두경부암에 속한다. 종양내과와 방사선종양학과 등이 함께 수술·항암·방사선의 효과를 예측하며 치료 방법을 찾는다.
모의 수술로 시간·시행착오 줄여
두경부암 수술·재건은 1㎜의 오차 싸움이다. 턱뼈와 눈 주변뼈처럼 뼈에 암이 생기거나 전이된 환자는 다리뼈 등을 활용해 암 때문에 잘라낸 뼈를 재건한다. 그런데 턱뼈는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저작 기능이 떨어지고 통증이 생긴다. 이 때문에 두경부암 협진팀은 환자 중 뼈에 암이 생긴 환자에겐 수술 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수차례 모의 수술을 한다. 환자마다 다른 해부학적 구조를 3차원 영상으로 재구성해 정밀한 수술 계획을 세운다.
이정우 교수는 “예전엔 수술 현장에서 환자의 턱 모양에 맞게 뼈 각도를 맞춰갔지만 지금은 모의수술 과정에서 추출한 데이터를 바로 적용해 오차를 줄이고 수술 시간을 10~20% 단축했다”고 말했다. 수술 시간이 줄면 의료진은 수술방에서 집중도가 높아지고, 환자에겐 감염 위험이 낮아진다. 이 교수는 2012년 병원에서 컴퓨터시뮬레이션을 활용해 턱뼈를 재건한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치료 계획 시 설정했던 목표와 실제 재건 사이의 오차 범위를 계산했다. 그 결과 60명의 환자 모두에게서 오차는 1㎜ 이내였다. 이 교수는 "그간 외국에선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수술한 환자 87%에게서만 오차를 1㎜까지 줄인 것으로 보고됐다”고 말했다.
두경부암 치료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1, 2기는 완치율이 80~90%에 이르지만 3, 4기 땐 30% 이하로 뚝 떨어진다. 다행히 일부 두경부암은 전조 증상이 있다. 초기 증상이 가장 뚜렷한 건 후두암. 목소리가 변한다. 구강암은 잇몸·혀에 궤양이 생긴다. 입이 자주 헐고 숨을 쉴 때 목구멍에 이물질이 걸린 느낌이 있으면 두경부암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이 교수는 “두경부암은 피부와 뼈가 가까워 1, 2기 때 진단되더라도 금방 악화한다”며 “2주 이상 증상이 지속되면 암 여부를 확인하고 즉시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두경부암 맞춤형 정밀재건 특징
● 기능·미용 고려한 치료 계획
● 수술 시간 10~20% 단축
● 재건 수술 오차 1㎜ 이내
● 재발·전이 조기 파악하는 추적관찰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