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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형 범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가장 광포한 살인자의 이야기는 불전』에 나온다. 「앙굴리말라」다.
그는 망신에 빠져 1백명의 사람을 죽이고 그 손가락을 목걸이로 만들어야 진실한 깨달음을 얻는다고 확신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길거리에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 끝에 마침내 1백명째를 채우기 위해 자기 어머니까지 치러한다.
그 순간에 불타가「앙굴리말라」의 앞에 나아가 그의 본심을 되돌아 보도록 함으로써 그를 구제한다는 이야기다.
그때「앙굴리 말라」는 갑자기 자신이 두려워지고 죽음과 공포속에 홀로 서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이 저지른 살인행위의 실상을 깨닫게 된다.
『불전』에서「앙굴리말라」의 범행은 깨달음의 욕망 때문으로 설명되었다.
현대의 범죄학자들은 욕망과 권리추구형의 범죄를 범죄의 4유형 중 아노미형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원한과 질투에 근거한 전통형 범죄, 타산과 허무에 근거한 근대형 범죄와는 잘 구분된다.
그러나 근년엔 자존심이나 실존성을 띤 무고별 충동적 관리형 범죄가 많아지고 있다.
관리형 범죄는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범죄다. 테크놀러지가 주도하며, 인간관계가 인격적 융합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집단성과 동질성이 강조되는 사회의 산물이다. 경쟁은 처절하지만 개인의 생존과 가치를 유지 하려는 삶의 마당에서 어느새 자신은 어느 누구인지도 모르는 타자에 의해 제거되고 탈락되고 마는데 대한 반발이다.
그 결과 사람은 자아에 대한 무자비한 격노를 느끼며 폭력으로 이어진다.
그 폭력이 자발성으로 나타나면 자살, 타자공격으로 나타나면 살인이 된다.
심리학자「브롬버그」는『살인하려는 자는 자살하지 않는다』는 정신분석학상의 공리는 범죄학적으로는『살인하는 자는 자살한다』로 바뀔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밀양의 5인조 납치살인범들은 강도·납치·살인에 강간·방화까지 하고 마침내는 자살까지 기도했다.
그들의 범행은 충동적인 데다가 대상이 무차별적이라는 점에서는 현대의 관리형 범죄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처지를 스스로 절망 끝에 증악하면서 자기 책임의 논이를 역전시켜 다른 이들을 증오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그들의 극악한 범죄는 그들의 인성이 만든 범죄는 아니다.
황금만능의 사회풍조, 수단방법을 도외시한 성공주의, 한탕으로 성공하면 팔자를 고치게 되는 가치몰각의 사회가 만들어낸 범죄다.
사람의 본성을 지키며 사는 사회, 개인의 인간적 가치를 소중히 알고 서로 돕는 사회의 유대가 새삼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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