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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빗나간 양TV 「AIDS 프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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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세기의·흑사병으로 불리는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이 마침내 우리 나라에까지 상륙한 것을 계기로 AIDS에 관련된 TV 프로그램이 부쩍 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7일 밤 KBS제 1TV가 방영한 외화 『잃어버린 청춘』과 29일밤 MBC-TV가 방영한 『이야기 좀 합시다-AIDS 어디까지 왓나』는 다른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각각 AIDS 에 관한 공개적이고 충격적인 접근을 시도, 눈길을 끌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려는데 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이 짙었다.
먼저 동성연애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KBS의 외화『잃어버린 청춘』은 미 전역에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으나 국내 방영에선 비윤리적 장면이 많다는 이유로 가위질이 남발, 가장 중요한 문제인 AIDS 전염 경로는 물론 줄거리 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
특히 이 영화는 「동성연애를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뇌」와「AIDS에 걸린 아들을 구하려는 모성애」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기 때문에 KBS가 내건「AIDS에 대한 경각심」이라는 교육적 성과를 얻기 힘들었다·이에 따라 KBS가 무수한 가위질을 예상하면서 굳이 이 영화를 방영한 것은 「동성애자들이 나오는 영화」라는 사실 하나로 시청자들의 눈길을끌어보겠다는 계산된 의도로 보였다.
한편 29일 밤 방영된 MBC의『이야기 좀 합시다』는 AIDS의 감염 경로·예방법·국내실태·그릇된 편견·사회학적, 성모럴 등 다양한 문제를 비교적 자세히 다루어 호감을 샀으며 특히 국내 TV 사상 처음으로 이태원 게이바 주인 출신 동성연애자 이모씨가 공개적으로 등장,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씨가 왜 출연해야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즉 이씨는「태어날 때부터 중성인 동성연애자들의 어쩔수 없는 입장」만을 되풀이 「AIDS는 대부분 동성애 등 비정상적 성 생활에서 감염된다」는 토론 내용과 동떨어진 진술로 일관했고 토론 참가자들 역시 이씨의 호소(?)에 거의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스스로 동성연애자임을 밝힌 이씨의 얼굴과 음성을 TV 화면을 통해 「구경」시켜 주었다는 점 이외에 굳이 이씨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만한 명분은 보이지 않았다. AIDS는 무서운 병이다. 따라서 매스컴 등에서 이를 진지하고 솔직하게 다루어야함은 당연하다. 그러나「솔직함」과「흥미 거리」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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