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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비행서클 「7공주」의 Y양|여학생 노리는 독 버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토요일인 지난 14일 하오.
서울 강남의 공립A중 교무실. 생활 지도 주임 P교사(39·국어)는 신입생 여자들의 가정 환경 조사서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다.
『요즘은 남자보다 여자애들에게 신경이 더 쓰여요』P교사는 10년째 학생 생활 지도를 맡고 있다. A중은 남녀 반반인 공학.
『입학초기부터 단단히 죄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기곤 한답니다』특히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여학생은 눈을 뗄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이었어요. 2학년 여학생 1명이 내게 인계됐어요. 고교 언니들의 서클에 들어 함께 본드를 흡입하고 음란행위를 하다 들켜 학교에 인계됐던 것입니다』
특별 지도로 지금은 건강한 3학년이 되기는 했지만, P교사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황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10월 중순의 새벽1시. 서울 영동의 K아파트 단지. 경비원 박모씨(54)가 순찰을 하다 11동 지하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지하실 문을 열고 플래시를 비춘 박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쪽 구석에 남녀 학생 7명이 뒤엉켜 웅크리고 있었다.
『누구야』얼떨결에 지른 고함에 정신을 차린 남학생 4명과 여학생 2명은 박씨를 제치고 도망쳤다. A여중 2학년 Y양 (14)만 비몽사몽간에 붙잡혔다. 경비실에 끌려온 Y양은 술취한 사람처럼 횡설수설했다. 지하실 구석에는 본드가 들었던 비닐봉지가 즐비했다. 본드를 흡입하고 환각 상태에서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었던 것이다. 달아난 남학생 4명과 여학생 2명은고교생. Y양만 중학생으로 막내였다.
Y양 등 여학생 3명은 영동 일대 3개 여고생이 주축이 된「7공주 클럽」의 멤버였다. 이들이 남학생들의 또 다른 클럽과 어울려 환각 상태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P교사는 Y양의 케이스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여학생서클이 고교만이 아니라 중학에까지 확산되고 있고, 활동비가 떨어지면 남자 이상의 폭력도 서슴지 않는데다 심지어 이렇게 어울린 끝에 중학생이 임신까지 하는 사례가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여학교 주변에서 독버섯처럼 돋아나는 폭력 비행 서클은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Y양의 「7공주」는 그 가운데서도 3개 여고를 끼고 세력 범위가 가장 넓은 조직. 그밖에도「일레븐」처럼 남녀 혼성도 있다.
또「사군자」「흑장미」「SS」「나이키」「프로스펙스」「밤 안개」「손오공」「초원」 에 다 어린이 대공원 무대의 「물레방아」「디딜방아」도 유명하다.
대부분은 학교주변·분식센터·롤러스케이트장·극장 주변을 무대로 활동비를 조달한다. 「물레방아」처럼 유원지가 무대가 되기도 한다. 활동비 마련을 위해 여학생 상대 갈취 행위를 하고, 환각제를 마시면서 혼숙을 예사로 한다. 싸울 때는 남학생 못지 않은 과격성을 보이고 흉기로 면도를 휴대하기도 한다.
Y양이 「7공주」가 된 것은 1학년 때 였다. 집 근처 롤러스케이트장에서 국민학교 동창의소개로 언니를 만난 것이 계기. 아버지의 근무처가 대구였고 어머니가 아버지 뒷바라지 때문에 집을 자주 비워 Y양은 방과후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언니와 친해졌다.「7공주」언니를 따라 「7공주」가 된 것이다.
『가끔 언니들은 선배 오빠들과 함께 구룡산 숲 속에 모여 본드를 마시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어요. 그 때마다 언니들은 저에게 망을 보라고 시켰어요. 어떤 때는 언니의 옷이 찢어져 사다준 일도 있었습니다. 가끔 집이 비는 언니가 집으로 남녀를 함께 초대해 이상한 비디오를 보기도 했죠』P교사와 만나기를 며칠 째 거듭한 뒤 Y양은 모든 것을 털어놨다.
『이웃 B여중에 다니는 국민학교 동창 X양 (14) 이 「흑장미」에 가입, 남학생 오빠들과 어울리다 임신을 하고 엄마 아빠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사건을 보면서 「7공주」그만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으나 무서워서 못 했어요. 탈퇴 기미만 보여도「단결 파티」란 걸 열어 가혹한 린치를 하거든요』P교사가 깊숙이 개입해서야 Y양은 그로부터 벗어날수 있었다. <김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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