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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채동욱 특검은 안 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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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검찰 역사상 걸출한 특수부 검사로 칭송받는 이들은 꽤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당대 최고의 수사검사’로 불렸던 이명재 전 검찰총장만큼 정치색을 떠나 두루 신망받던 이도 없다. 그가 2002년 총장이 되자 이례적으로 여야 모두 환영 논평을 낸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재임 때 아무도 안 만나 ‘수도승 총장’으로 불린 그는 일화도 많다. 그중 백미는 구속한 피의자치고 그를 원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대목이다. 오죽 공평무사했으면 그랬겠는가.

특수통이 검찰총장 되기는 무척 힘들다고 한다. 수사하다 보면 원한을 사기 십상이라 늘 중상모략에 시달리고 자연 출세길이 막힌다는 거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이 전 총장 이후 11년 만인 2013년 또다시 특수통 총장이 나왔다. 혼외자 시비로 퇴진했다 요즘 네티즌 사이에서 최순실 특검 ‘0순위’로 거론되는 채동욱 전 총장이다. 채 전 총장 역시 출중한 수사력에 한때는 신망도 두터웠다.

그럼에도 그는 두 가지 이유로 자격이 없다. 우선 그는 끝까지 “혼외자가 없다”고 잡아뗀 거짓말쟁이다. 그를 믿었던 한 후배 검사는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바보가 됐다. 공인이, 그것도 검찰 총수가 만인을 속였다는 건 용납될 수 없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린 것도 백악관 안에서 22세의 인턴과 문란한 짓을 한 게 다가 아니다. 그보다 위증을 한 게 더 큰 죄로 여겨졌다. 그만큼 공인의 말은 한 톨의 거짓도 없어야 한다.

둘째, 그가 특검이 되면 복수심에 불타 공정한 수사를 못할 공산이 적잖다. 무릇 수사란 누군가를 최대한 응징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모든 죄를 낱낱이 밝히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 죄를 물어야 한다. 채 전 총장은 방송에 나와 “눈치가 없어서 잘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자기만 빼고 다 법대로였다”고 공격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사감을 자백한 꼴이다.

두 손에 저울과 칼을 든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 그가 심판할 때면 눈을 안대로 가린다. 저울은 공정함을, 칼은 엄격한 법 집행을, 그리고 눈을 가린 건 사사로움에 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라틴어 법언(法諺)에 이런 게 있다. “법관은 자신에게 가해진 잘못을 처벌할 수 없다.” 복수심으로 단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음을 나타낸 말이다. 그가 그나마 남은 신망을 지키려면 “특검으로 추천해 줘 감사하나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사양하는 게 옳다.

남정호 논설위원